하성운 “넘어져야 큰 파도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성운은 파도를 기다린다.
GQ 두 컷쯤 찍었을 때 기획사분께 물었어요. 다음 앨범 음악 들어볼 수 있느냐고.
SW 들어보셨어요?
GQ 네. 들어보니 짐작하겠더라고요. 하성운이 이토록 변한 까닭을.
SW 그 음악이 영향을 준 건 전혀 아니에요.
GQ 그래요? 그러면 사람이 바뀐 것이 먼저인가요? 어쨌든 굉장히 자유로워졌고, 눈빛도 깊어졌어요. 입대 전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 같아요.
SW 바뀌었나 봐요. 삽질을 많이 해서.(웃음)
GQ 군대에서 새롭게 느낀 감정 있어요?
SW 있었죠.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가 된다는, 전에는 이해 못했던 말이 이해가 됐어요.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조금 의젓해진 것 같아요. 너무 힘드니까 위로도 받고 싶어졌고요. 그동안 내가 누군가에게 실수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 고마웠던 것도 생각나고, 마침 그 순간에 연락해주는 사람이 너무 고맙고 감동이고···.(눈가가 붉어진다.)
GQ 울 것 같아요.
SW (삼킨다) 먼저 군대 갔다 온 형들이 연락해서 잘 챙겨주셨어요. 디오 형, 진욱이 형이 자기 힘들었던 이야기해주면서 “꼭 면회 갈게” 이야기해주시고, 영케이 형은 커피포트 선물 보내주셨어요. 처음에는 그런 사소한 챙김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그 안에 있다 보니 고마운 것도, 미안한 것도 크게 느끼게 되더라고요. 가끔 휴가 나가면 사람들이 “너 왜 이렇게 변했어? 왜 점잖아졌어? 왜 다정해졌어?” 묻더라고요. 원래 저는 제 얘기만 계속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GQ 무엇이 가장 위로가 되던가요?
SW “잘 있어?”라는 연락 한번이 위로였던 것 같아요.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 별로 궁금하지 않잖아요. 바쁘니까 생각도 못 하고 까먹죠. 맞다, 걔 군대 있었지? 그러니까 밖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거죠. 저도 요즘은 정신없이 지내는 와중에 가끔씩 문득 동기들 생각이 나요. 잘 지내나? 오늘 하루 너무 길었을 텐데. 한번은 군대에 있는 (방탄소년단) 지민이가 전화해서 갑자기 미안하다는 거예요. “뭐가 미안한데?” 답하면서 저도 웃었죠. 그 마음을 아니까. “형, 형이 군대 있을 때 내가 밖에서 너무 열심히 놀았어. 전화 한 통 못 해준 것도 미안하고···”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야, 그거 봐, 그렇지? 너 내가 혼자 얼마나 힘들었겠냐? 근데 난 이제 나간다!”
GQ 안부 묻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위로였군요.
SW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오늘 하루는 어땠어?” 하고 물어봐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오글거리는 건 못 참아요. “지금 8시 55분이니까, 휴대 전화 반납하기 5분 전이네? 그럼 청소하고 저녁 점오하고 자겠네? 나는 컴퓨터 게임하러 간다?” 이런 식이죠.
GQ 이야기를 듣는 능력도 길렀어요?
SW 덜 말하고 더 듣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기 얘기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내가 아무리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더라도, 들어주는 것 자체로 사람이 변하더라고요. 그런 걸 알게 되니까 계속 들어주려고 해요. 근데 사실 들어주는 척하면서 흘려 들어요. 집중력이 떨어져서. 아하하.
GQ 언젠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듣기에 따뜻해야 한다”고 했죠. 하성운이 느끼는 따뜻한 음악이란 뭐예요?
SW 일단 코드가 쉬워야 해요. 처음 들었을 때 쉬운 노래. 거기에 제 목소리만 얹으면 되는, 그런 곡들을 들으면 위로가 되고 편해지고 따뜻하게 느껴져요. 제 얼굴이 하얗고 좀 그렇잖아요?(미소) 보여지는 제 이미지처럼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즐겨 듣고, 저도 그런 노래를 하고 싶어요. 제가 즐겨 듣는 노래는 항상 포효하고, 한이 담겨 있었어요. 제가 그런 데서 ‘오우!’하고 뭔가를 느끼더라고요. 음악을 즐기며 행복한 모습이 제일 자연스럽고 저다운 것 같아요.
GQ 하성운이 듣기 좋은 음악이랑 잘하는 음악은 일치하는 것 같아요?
SW 네. 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응원해주시는 것 같고요. 제 노래 중에서 특히 감성적인 노래로 입덕하는 분이 많아요.
GQ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시기에 따라 따뜻함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어떨 때는 툭 던지는 위로가 더 따뜻할 때도 있는 것처럼.
SW 저는 제 음악을 듣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는 마냥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툭’은 아니에요. 어떤 때는 힘들고 슬프기도 하고 감정이 매번 변하죠, 저도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팬분들은 마냥 저를 사랑해주시잖아요. 그러니까 한없이 주고 싶고, 따뜻하고 싶어요. 친구들 앞에서는 ‘싸가지’지만.(웃음)
GQ 그런데 이상하네요. 아까 들은 음악은 뭐랄까, 좀 반전이었거든요.
SW 저도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걱정이 앞섰어요. “스읍, 어떡하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회사의 방향성도 고려해야 하니까. 이미지 변신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전역 후잖아요. 그 노래를 계속 듣고 따라 해 보면서 저도 마음이 점점 바뀌었어요. 오케이. 이왕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 제대로 해보자.
GQ 잘 부르고 싶은 파트에는 굉장히 집착한다면서요.
SW 왜냐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좋다고 생각하는 파트이기 때문에. 그 파트가 나오기만을 사람들이 기다릴 만한 구간에는 집착해요.
GQ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어요?
SW 왜냐하면, 듣기에 좋으니까요. 곡에서 벌스, 프리코러스, 코러스, 훅이 전부 좋으면 좋겠지만, 대체로 그중 하나가 더 좋기 마련이잖아요.
GQ 이번 곡에서 진짜 잘 부르고 싶은 파트 있었어요?
SW 잘 부르고 싶었던 파트, 잘해야 되겠다는 파트가 있었어요.
GQ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해야 하는 것은 달라요?
SW 다르죠. 내가 잘할 수 있는 파트는 잘 불러야 하고, 내가 못하는 파트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서 잘해야 하고요. 잘하는 건 잘하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하고, 못하는 건 더 잘해야 하니까 열심히 하는 거예요.
GQ 하성운 안의 어떤 면이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 같아요?
SW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센스 덕분인 것 같아요. 센스 중에서도 음악을 듣는 귀, 좋은 음악을 듣는 귀요.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도 좋다고 해요. 곡을 셀렉할 때도, 작곡할 때도 듣는 귀가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고르고 만들 수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곡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코드나 음역대 같은 것들요.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음악을 가려내는 센스가 있어요. 사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데서 센스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GQ 2019년 <지큐> 인터뷰에서 하성운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원하는 게 확실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바로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변함없어요?
SW 지금도 그래요. 우왕좌왕하지 않아요. 이건 맞다, 이건 아니다, 딱 결정해요.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겠죠. 그래도 제 선택을 믿으려고 해요.
GQ 후회도, 긴가민가하지도 않고.
SW 후회 안 하죠. 왜냐면 제가 선택한 거니까요. 어쩌겠어요, 제가 만든 길인 걸. 긴가민가할 때도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쨌든 해결은 되더라고요. 실수하고 후회해도 다시 잘하면 되는 거고요. 우리가 항상 정답을 알고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저것도 해보면서 나아가는 거죠. 그러면서 나중에는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고요. 그래서 저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고요.
GQ 나이가 들더라도 그 나이에 맞는 재미를 찾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지금 하성운이 느끼는 재미는 무엇인가요?
SW 학업을 마치고 돈을 벌기 시작하는 때가 보통 30대인데 저는 20대 때 했잖아요. 일찍 꿈을 이뤄 돈을 벌었고, 군대도 다녀왔고, 30대에는 돈을 써보는 것이 또 다른 재미일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이 생길 것 같고,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없어져서 힘들어질 수도 있고, 여태까지 번 것보다 더 많이 벌 수도 있을 거고요. 제 일을 음악이나 가수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음식점이나 어딘가 가면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나는 왜 이곳을 좋아했는지 더듬어보는 것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서 열광하게 한 것처럼, 다른 분야에서 제 아이디어를 내서 열광하게 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점점 시야가 넓어지면서 여유도 생기고,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기 위해 죽기살기로 매달렸다면, 지금은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고, 그런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또 어려워요.
GQ 서핑을 좋아한다고요. 지금의 하성운을 서퍼로 비유한다면 어떤 상태예요?
SW 열심히 타다 보면 큰 파도가 올 때도 있고, 얕은 파도가 올 때도 있고, 파도가 없어 기다릴 때도 있어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큰 파도만 와도 재미없죠. 얕은 파도라고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요. 이제는 어떤 파도가 와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큰 파도를 만나 부딪쳐 넘어져도 보고.
GQ 넘어져도 괜찮아요?
SW 넘어져야 큰 파도를 당연히 더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