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 티셔츠가 올여름 유난히 뜨거운 이유
알렉산더 맥퀸의 2001 S/S 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전설 중에 전설로 남은 이 쇼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컬렉션 룩뿐만이 아닙니다. 네이비와 그레이 컬러의 링거 티셔츠와 빛바랜 데님을 입고 쇼를 마무리한 알렉산더 맥퀸의 옷차림도 모두에게 잔상이 깊이 남았죠.
디자이너들이 수수하되 아이코닉한 옷차림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워낙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맥퀸의 이 옷차림은 더욱 자주 회자되었죠. 당시 링거 티셔츠는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기 직전이었거든요. 링거 티셔츠의 첫 번째 전성기는 1970년대였습니다. 유스컬처를 중심으로 퍼진 링거 티셔츠는 골디 혼, 존 레논, 조디 포스터 같은 셀럽이 즐겨 입으며 당시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지요. 이후 두 번째 전성기는 앞서 말한 2000년대입니다. 인디 슬리즈 스타일과 함께하며 아메리칸 어패럴, 어반 아웃피터스 등의 시그니처로 통했죠. 이 귀환에 동의한 건 맥퀸뿐 아니었습니다. 패리스 힐튼을 비롯한 여러 셀럽, 캘빈 클라인, 심지어 ‘해리 포터’까지 합세했죠.
그리고 2024년, 링거 티셔츠는 어느 때보다 거리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런웨이에서도 간간이 눈에 띄긴 했습니다. 초포바 로위나, 보디, 꾸레주, 드리스 반 노튼 등 몇몇 하우스의 최근 컬렉션에 카메오처럼 등장했죠.
세인트 존스 대학교 패션학 조교수인 엠마 맥클렌던(Emma McClendon)은 “링거 티셔츠는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템이기도 해요”라고 입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불안한 요즘 같은 시기에 링거 티셔츠가 유행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감히 추측하자면 1970년대, 2000년대, 그리고 지금, 각 시대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봐요”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트렌드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배경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상황이 모두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격변하는 시기일수록 이런 성향이 짙죠. 지금 미국인을 설명할 수 있는 건 대체 뭘까요? 미국인으로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맥클렌던은 링거 티셔츠의 귀환 역시 이 질문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유행하는 모든 음악과 스타일, 스포츠웨어와 각종 문화가 이 질문에 답하려고 했던 것처럼요. 그는 “전쟁과 여러 사회 문제에서 오는 불안감을 극복하고 달래보려는 겁니다. 미국 문화를 돌아보고 재조명하면서요”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게 불확실해지면 익숙한 걸 찾게 됩니다. 링거 티셔츠는 사회가 변화를 맞을 때마다 돌아왔습니다. 전조 증상처럼요. 한때 유스컬처의 상징이었고, 2000년대 스타일을 대변했던 이 티셔츠는 또 한 번 이토록 친근한 얼굴을 한 채 다시 찾아왔습니다. 맥클렌던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스타일이에요. 돌아올 때마다 동시대적인 멋을 뒤섞어 재해석하긴 했지만요”라고 정리합니다.
스타일리스트 디오네 데이비스(Dione Davis) 역시 맥클렌던의 생각에 공감하더군요. 실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면서요. 그녀는 “수년 동안 스포티한 스타일이 인기를 끌긴 했어요. 하지만 링거 티셔츠는 지난 몇 개월간 유독 더 자주 보이기 시작했죠. 실용성이 큰 이유일 거예요. 요즘 같은 날씨에 관리하기 쉬울뿐더러 디자인이 간결하고 멋스럽잖아요”라고 설명합니다.
링거 티셔츠는 모두의 옷장에서 지칠 줄 모르고 활약하고 있습니다. 제니퍼 로렌스, 셀린 디온 같은 셀럽부터 여러 하우스가 각종 캠페인을 통해 링거 티셔츠를 선보이고 있죠. 올림픽을 기념하는 디자인도 눈에 띄고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링거 티셔츠는 그냥 티셔츠가 아닙니다. 미국 문화의 표식이자 기본으로 돌아간 시대의 흐름을 대변하는 아이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