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로 첫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티베트로 첫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뒤 사과했다. 함부로 평범하게 묶은 그들에게.
일개 평범한 고수들
처음으로 패키지 여행을 갔다. 목적지는 티베트. 현재 이곳은 자유 여행이 불가능하다. 중국 비자와 티베트 입경 허가서를 별도로 받고 현지 여행사를 통해 운전기사와 가이드를 동행해야 한다. 이래저래 혼자서는 절차를 감당하기 싫었다. 자유 여행 시절을 놓쳐서 번거로워진 것이 짜증 났지만 그나마 여행사에 375만원을 입금하면 넋 놓고 9박 10일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안심됐다. 여름휴가를 다녀오려고 일을 몰아서 하다 보니 여행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12명 이상 출발 확정인데, 16명이 모였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매일 인원을 체크했다. 제발 더 오지 마라, 이렇게 많으면 어찌 다닌담. 드디어 출발일. 인천공항에 여행사를 위한 별도의 카운터가 마련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제2여객터미널의 H카운터에는 10여 개 스탠드 테이블이 있고 각 여행사 팻말이 걸려 있었다. 혹시나 젊은이가 있으려나 했지만 가이드 말고는 노인들이었다. 갓 퇴직한 60대의 동창 4인이 여기서는 청년회장급이다. “이렇게 젊은 분이 와주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가이드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지난번 티베트행에는 거의 80대였다고. 나는 손을 자연스럽게 빼며 ‘망했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인원이 많은데 한번 모이려면 한참 걸리겠어. 티베트는 고산병이 심하다는데 다들 어떻게 버티려는지. 유럽행 항공권 가격을 패키지에 쏟아부었는데 원하는 바를 가져갈지 걱정됐다.
걱정은 첫날 20인승 버스에서 증폭됐다. 사람들은 비좁고 낡은 버스에 이의를 제기했다. “열이 확 오른다”면서 대구에서 온 여행객이 소리쳤다. 가이드는 티베트에서는 정부가 차량을 지정하기에 요청해도 원하는 버스를 대절하기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무례한 사람들 사이에서 쩔쩔매는 가이드가 가여웠지만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고산에 익숙해지려면 체력을 아껴야 했다. 티베트 수도 라싸의 해발고도는 3,600m다. 그날 현지 가이드가 추가로 합류했다. 티베트에 사는 조선족이었다. 그녀는 “우리는 굉장히 어렵습니다”라는 식의 화법을 구사해 1990년대 서울 사투리를 듣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그녀가 강조한 주의 사항 첫 번째는 사흘간 샤워 금지. “뜨거운 물로 씻어도 오한이 납니다. 여러분을 지키셔야 합니다.” 다음 날 오한을 호소하는 첫 피해자가 나왔다. 찝찝해 머리만 감았는데 이럴 줄 몰랐다고. 나는 이 악동 같은 무리들과 여행이 가능할지 더 아득해졌다.
고지대에서 며칠 머물기란 쉽지 않다. 다들 입술이 보랏빛이었고 두통을 호소했다. 가장 젊은 나라도 멀쩡하고 싶었지만 아침에 코피가 흘렀다. 여기선 나도 그들처럼 나약한 외지인일 뿐이었다. 3일 차에 해발 5,200m 산을 오를 때는 누아르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정상에 오르자 한 할아버지가 배낭에서 빨간색 두꺼비를 꺼냈다. “5,200m에서 먹는 소주가 궁금하잖네.” 나는 그의 보랏빛 입술을 보며 과감함에 놀랐지만, 그만큼 한잔하고 싶었다. 우리는 고산병을 피해 금주 중이었고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가이드가 고량주를 한두 병 시켜주긴 했다. 하지만 소주는… 매우 귀하다. 할아버지는 한 마디 나누지 않은 내게 종이컵을 건넸다. “그쪽도 맛은 봐야제.”
고산병도 날려버릴 맛이었다. 맑은 공기가 소주의 쓴맛을 해독하는 과학적 프로세스가 있나 보다. 나머지 일정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 달라이 라마가 살던 궁에 오르고, 매일 아침 일찍 버스를 수 시간씩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탈자는 없었다. 나는 세 번째 코피를 흘렸다. 다들 체력은 인정이네.
티베트에서 중국 시안으로 돌아올 때는 비행기 대신 열차를 탔다. 이 ‘칭짱 열차’를 위해 티베트행을 결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지대를 지나기에 ‘하늘 열차’로도 불린다. 하지만 속도는 꽤 느려 중국까지 들어오는 데 최소 1박 2일이 걸린다.
“객차에는 휴지가 없으니 꼭 챙겨오라”는 가이드의 사전 당부부터 열차 컨디션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가 머문 침대칸 2등실은 꽤 깔끔했고, 식당칸은 오리엔트 특급 정도는 아니라도 하얀색 테이블보와 꽃을 꽂은 화병, 정갈한 유니폼의 승무원들이 디너 메뉴를 주문받는 등 낭만 열차라 해도 좋았다. ‘이제 고산을 벗어난다’는 안도감으로 다들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1박 2일간 거의 식당칸에서 고량주와 맥주를 마시며 보냈다. 나도 얼결에 껴서 (식당칸에는 테이블이 8개뿐이었기에) 그들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내게 던진 질문 대부분은 “여행하다 마지막에 오는 곳을 어떻게 이리 빨리 결정했냐”는 것이다. 나는 “그냥 이 열차를 타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각자의 여행사(史)는 놀라웠다. 그들은 정말 티베트가 거의 끝이라고 할 만큼 많은 나라를 다녔다. 교장으로 은퇴한 70대 여행객은 68개국을 돌았다. 이 고산 행군 후 바로 다음 달에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로 떠난다. 연말까지 3개의 여행이 더 잡혀 있었다. 60대 4인방은 남미와 아프리카를 돌았고 그중 한 명은 외국인에게 한국을 더 잘 소개하고 싶어서 가이드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다들 히말라야 등반 시 셰르파의 한국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데 동조했고, 실크로드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조언을 나눴다. ‘여행력’이 있다면 내가 여기서 말단이었다.
나는 오랜 기간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으로 다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내가 무시했던 패키지 동기들은 자신만의 여행사를 열정으로 구축해온 간달프들이었다. 생각해보니 버스 상태에 “열이 확 오른다”던 여행객은 식사를 챙기느라 분주하던 가이드에게 신경 끄고 앉아서 먹으라고 권했다. 피가 안 돈다면서 팩 소주를 꺼내던 노인은 한 번도 술 때문에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았고 무엇보다 심드렁한 내게도 나눠주었다.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본 티베트 가이드는 사원과 불교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티베트 일정이 끝나고,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의 핑야오라는 도시에 사흘간 머물렀다. 한나라 시절 성벽과 가옥을 그대로 간직해 고대 도시로 불리며, 덕분에 사극 드라마 촬영도 잦다. <쿵푸 팬더 2>의 배경이기도 하다. 패키지에서 만난 간달프들 덕분에 핑야오에 머무는 동안 마주치는 주민들의 숨은 능력을 가늠하곤 했다. (그만큼 할 일이 많지 않은 자그마한 성벽이다.)
거리에선 종종 마작판이 벌어졌다. 한때 마작을 배웠기에 재미 삼아 지켜봤다. 처음엔 한량들 부럽다, 싶었다. 그들의 손은 조금의 낭비도 없이 정확히 마작 패를 가져오고 짝을 맞췄다. 판은 정말이지 빠르게 돌아갔다. 조용한 가운데 마작 패 넘어지는 소리만 탁탁. 한 아주머니는 유튜브를 보면서 했으며, 이겨도 반응 없이 다음 판을 시작했다. 고수의 기가 마작판을 감쌌다. 그들은 <색, 계>에서 마작 하던 탕웨이만큼 우아했다. 정말이다. 그러고 보니 쿵푸 팬더는 고수가 된 뒤에도 겉보기엔 만두 좋아하는 팬더다.
나는 주변 사람을, 대중을 ‘평범함’으로 묶어버리곤 했다. 평범이란 절대 무시할 단어가 아님에도, 내 뉘앙스에는 흔하고 개성 없고 좀 모자라단 의미를 내포했다. 물론 살아가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절감했다. 평범한 부모님처럼 살기 위해 나는 얼마간의 저축으로 평범한 집을 사고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때 평범함은 ‘정상적인 기준’ ‘사회가 요구하는 커트라인’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폄하의 의미로 평범함을 사용했다. 대중을 너무 평범하다고 그래서 통속적이라며, 나는 그보다 고고한 취향을 가졌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묻혀 사는 안타까운 일인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렇게 남들의 성과와 행보에 ‘시니컬’했나 보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김기태 작가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평범함이 얼마나 다채롭고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대단한지 설파한다. K-팝 스타가 등장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팬덤 가운데 한 개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이다. 이 작품 말고도 많은 소설은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이야기해왔고, 나는 이를 오래 잊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서평 제목은 ‘평범한 자는 들어오라’.
지난여름 운 좋게도 미쉐린 3스타 셰프와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한 행사에 동행했다. 그는 주변 셰프들이 추천해줬다는 동네 식당을 예약했다. 그곳은 아침만 제공하기에 일찍 만나기로 했다. 도심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정말이지 동네. 식당도 몇 곳 없는 거리지만 이곳은 북적북적 만석이었다. 투박한 빵 사이에 오징어와 달걀을 으깨 넣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세상에, 정말 맛있었다. 5스타도 아깝지 않은 샌드위치 레시피를 가진 평범하지만 비범한 동네 셰프.
아침을 먹으며 또 한 번 놀랐다. 멀끔한 외모와 스펙 때문에 탄탄대로였을 것 같은 3스타 셰프의 과거가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넉넉지 않은 경제 사정으로 일찍 독립해 파병 부대의 일원이었고 요리를 배운 후에도 노숙을 할 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 1시간 남짓한 식사에서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나는 ‘사람마다 우주가 있다’를 떠올렸다. 미쉐린 3스타가 결코 평범하진 않으나, 평범하다고 치부될 때부터 그만의 우주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누군가 그랬다. 개개인이 소우주라고. 바둑 기사 이세돌이 은퇴를 앞두고 방송인 김어준과 인터뷰한 적 있다. 친절한 전설이지만 인터뷰 중간에 머뭇거렸다. 자신의 바둑 세계를 대중에게 설명하고 싶지만, 어느 부분은 바둑과 본인만 알 수 있어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개개인마다 우주가 있고, 그것은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 이세돌의 우주, 미쉐린 3스타의 우주, 패키지 여행을 온 노인의 우주, 티베트 가이드의 우주. 그 우주에 ‘리스펙’을 보낸다.
방탄소년단이 부릅니다. ‘소우주’.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