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걸 줘서는 만족시킬 수 없어요” – 앤더슨벨의 김도훈
세계가 한국 패션을 탐닉하는 건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한국 패션을 정의하는 6팀의 디자이너는 현재에 충실한 채 눈앞에 놓인 트랙을 달린다.
“상징적이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보그>에 꼭 나오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김도훈은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보그 코리아>를 건너뛰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지난해 ‘보그 비즈니스’가 선정하는 100 이노베이터 리스트에 포함됐으니 말이다. 하이패션을 다루는 매거진 쪽으로 연줄이 많지도 않지만, 앤더슨벨이 패션계의 관심 밖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밀라노에서 쇼를 발표하기 전까진 말이다. “사실 쇼를 열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증명할 길은 충분히 많다고 믿었으니까요.” 브랜드를 함께 시작한 최정희 대표의 끈질긴 설득으로 컬렉션 준비를 시작했고, 단 두 번의 쇼는 브랜드의 입지를 완전히 바꿔놨다. “창피한 게 제일 싫거든요. 열심히 하는 것도 단지 그 이유예요. 늘 부족함을 느끼고 나 자신을 칭찬하지도 못하죠. 좋은 스태프를 꾸리고,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려는 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앤더슨벨의 초창기를 안다면, 과감하고 급진적인 최근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2014년 지극히 일상적인 캐주얼 오피스 룩으로 시작한 브랜드가 본색을 드러낸 건 2019년부터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룩을 추가했고, 디자인과 취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의상에 해외시장이 반응하면서 2022년에는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더라고요. 적어도 우리의 경우, 그런 결과가 더 나은 다음을 위한 힌트가 되진 않았거든요.” 팬데믹 때 검색량과 판매 수치 등 AI를 활용한 데이터가 패션계를 평정할 무적의 신처럼 여겨지던 분위기가 떠올랐다. 김도훈은 오래된 진리를 내뱉었다.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지죠. 원하는 걸 줘서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어요. 그들이 원치 않았지만, 좋은 걸 보여주면 끌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결론은, 아직 우리의 피크는 오지 않았다는 거죠.” 모델들이 입은 2025 봄/여름 컬렉션은 <보그 코리아>에 최초로 공개되는 의상이다. 물론 10월호가 나오기 전에 쇼를 하겠지만, 어쨌든 물리적인 시간 순서로는 그렇다. “카우보이와 클로에 세비니, 커트 코베인으로 표현한 웨스턴 컬처를 아시아의 관점에서 바라본 컬렉션입니다. 모델이 입은 트롱프뢰유 드레스의 착시 효과는 서로 다른 문화의 상충을 상징하고요. 앤더슨벨의 DNA는 동떨어져 있거나 정반대되는 테마의 부딪침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스파크입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