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로마에서 선보인 다음 순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로마에서 디올 크루즈와 꾸뛰르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윽고 그녀는 패션 역사의 다음 순간으로 전진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가 로마, 그러니까 그녀의 고향에 바치는 올 화이트 컬렉션을 선보이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 이 패션쇼에 초대받은 여성들은 모두 흰옷을 빼입고 빌라 알바니 토를로니아(Villa Albani Torlonia)의 화려한 정원에 모였다. 그리고 모두가 기대했다. ‘페미니즘의 기수’로 불린 그녀가 펼칠 압도적인 피날레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키우리의 쇼는 리조트 컬렉션과 꾸뛰르가 혼합된 형태였다. 겉보기엔 연약한 듯하지만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겉보기엔’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그녀에게 이번 쇼는 자전적 의미와 문화적 뉘앙스, 약간의 무의미한 유희와 역사적 상징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그녀가 백스테이지에서 웃으며 말하길, 이번 쇼는 “일부러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1960년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 <라 벨라 콘푸시오네(La Bella Confusione)>가 이번 쇼와 연출의 출발점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혼란이죠”라고 그녀가 웃으며 덧붙였다.
사실 로마에 반나절만 머물러도 그 도시가 어마어마한 역사를 얼마큼 켜켜이 쌓아 육중하게 유지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키우리는 이번 쇼가 로마의 패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헌사라고도 설명했다. 1950년대 ‘돌체 비타’ 시대의 영화적 자취, 치네치타(Cinecittà) 영화 산업의 전성기, 그리고 그녀가 일했던 발렌티노와 앞으로 활약할 펜디의 영광이 뒤얽힌 도시다. 또 한편으로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후원자이자 상류층 사교계의 주인공이었던 미미 페치 블룬트(Mimì Pecci-Blunt)의 삶을 기념하기도 했다. 키우리와 그녀의 딸 라켈레(Rachele)는 최근 미미가 운영했던 테아트로 디 코메타(Teatro di Cometa)를 복원했다.
키우리가 미미에게서 자신을 투영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디올에서 9년 넘게 일하는 동안 그녀 역시 여성 예술가와 장인, 공연자의 변함없는 후원자였다. 패션쇼가 열리던 밤, 로마의 의상 하우스 티렐리(Tirelli)가 만든 흰색 의상을 입은 현지 무용수들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즉흥극)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미미가 1930년 파리에서 열었던 ‘발 블랑(Bal Blanc)’을 재현한 장면이었다. 덕분에 관객은 모두 흰옷 차림으로 마르셀 뒤샹과 만 레이의 카메라 앞에서 초현실적인 역사 속 인물로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쇼의 시작은 길고 날씬한 실루엣의 더블 페이스 캐시미어 룩 네 벌이었다. 그중 하나는 팬츠 수트와 테일코트였다. “이건 오뜨 꾸뛰르예요”라고 마리아 그라치아가 말했다. “이런 옷은 손으로만 만들 수 있어요. 가장 단순한 것들이 때로는 가장 만들기 어렵죠.” 이 절제된 미니멀리즘의 풍요로움은 곧 이어진 반투명한 드레스로 확장되었다. 레이스 디테일만 해도 셀 수 없었다. 입체적인 꽃 장식, 잔물결 같은 러플, 잎사귀 모양 컷아웃, 물결무늬 아르데코 장식, 금빛 프린지로 덮인 격자무늬 등. 속옷은 살갗을 드러냈고 신발은 모두 플랫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키우리가 디올에서 구축해온 시그니처 실루엣, 즉 그녀가 디올 하우스 역사에 새긴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더 깊은 레이어가 있었다. 특히 63번째 룩은 곱슬곱슬한 러플로 이루어진 거의 투명한 드레스였는데, 이는 그녀의 옛 스승인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그의 1968년 ‘화이트 컬렉션’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였다. 이어 ‘바티칸 콘클라베(Vatican Conclave)’ 순간이 찾아왔다. 빨간 단추가 달린 짧은 검정 코트는 명백히 추기경의 상징이었다. 또 다른 순간에는 레이스 밑단의 셔츠가 성직자의 예복을 연상시켰다. 흥미롭게도 미미의 삼촌 중 한 명이 실제로 교황이었다. 묘하고 흐릿한 연결 고리다.
하지만 키우리는 미미의 생애가 지닌 더 중요한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일했습니다. 끔찍한 시기였죠. 그럼에도 연극, 음악회, 예술 전시를 기획하는 데 몰두했어요. 무슈 디올 역시 그 시절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셨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
쇼 마지막에는 그녀가 선보인 액체처럼 흐르는 금빛 벨벳 드레스와 조각상 같은 드레이프를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구현한 비즈 드레스가 등장했다. 단순한 페플로스(Peplos, 기원전 6세기 초 무렵까지 고대 그리스 여성들이 입었던 단순한 소매 없는 겉옷) 실루엣은 키우리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코르셋 실루엣의 디올 전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유일하게 ‘몸을 감싼 구조’를 암시하며 컬렉션을 마쳤다. 그것은 코르셋이 아니라, 갑옷이었다. 로마의 여성 전사들이 전진하듯, 키우리 역시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