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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Begins Again

한국에서 의무 군 복무를 위해 활동을 중단한 지 4년여가 흐른 지금, BTS 멤버들은 아티스트이자 한 인간으로 성장했으며, 각자의 솔로 활동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세계 최고의 그룹이 다섯 번째 정규 앨범과 대규모 월드 투어로 재결합해, 그들이 혼자일 때와 함께일 때 어느 쪽이 더 강한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제시한다.

왼쪽부터 | 슈가가 입은 셔츠, 이너 셔츠, 타이,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시계, 예거 르쿨트르. 귀고리는 슈가의 것. 제이홉이 입은 재킷, 이너 톱, 모두 루이 비통. 목걸이, 티파니앤코. 뷔가 입은 니트, 셔츠, 타이, 모두 셀린느. 시계,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오른팔 위쪽 브레이슬릿은 뷔의 것. RM이 입은 코트, 드리스 반 노튼. 스웨터, 유밋 베넌. 귀고리는 RM의 것. 진이 입은 재킷, 셔츠, 모두 구찌. 브레이슬릿, 반지, 모두 프레드. 지민이 입은 재킷, 디올. 탱크톱, 짐멀리. 목걸이, 반지, 모두 티파니앤코. 귀고리는 지민의 것. 정국이 입은 셔츠, 보테가 베네타. 귀고리, 입술 링은 모두 정국의 것.

2025년 중반, 세계 최대 그룹 BTS의 마지막 멤버가 한국의 모든 신체 건강한 남성에게 요구되는 의무 군 복무를 마친 이후, 7명의 멤버는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해 한 지붕 아래서 재결합했다.

The Seven. 7명의 멤버 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은 그들 모두가 아직 10대였던 2010년대 초부터 함께 그룹 활동을 이어왔지만 2019년 이후로는 같은 곳에서 살지 않았다. 몇 년간 떨어져서 각자 군 복무를 마치고 솔로 활동을 이어가던 이들은 이제 다시 함께 일할 때를 맞이했다.

“우리는 일주일 중 6일을 일했어요, 마치 회사원처럼요.” 리더 RM이 말했다. 그들은 엄격한 일과를 따랐다. 아침에는 짐에서 함께 트레이닝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갔다가, 오후 1시까지 스튜디오로 출근해 다양한 작곡가 및 프로듀서들과 함께 새 곡 작업을 오후 8시 정도까지 진행한 다음,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한 집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며, BTS는 의도치 않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 코퍼레이션)의 연습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슈퍼스타가 되기 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데뷔하기 위해 무엇이든 바쳤던 그 시절로. 전 세계적으로 5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과 1천40억 회 이상의 스트리밍 기록을 세우기 전, 그리고 이들이 그래미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가수가 되기 전, 빌보드 200 앨범 차트와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기 전, 그리고 유엔에서 연설하기 전의 이야기다. 이들이 전 세계에 걸친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기 전,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아시아 아티스트이자 장르와 국적은 물론 시대를 초월한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링 그룹 중 하나가 되기 전 말이다.

지금은 BTS 신화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2010년, 당시 서울의 신생 음반사였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열여섯 살의 RM과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이미 로컬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는 천재 래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비슷한 신에서 활동하던 작사가 겸 래퍼 슈가와 비보이 출신 댄서에서 래퍼로 변신한 제이홉이 곧이어 합류했다. 회사는 더 수익성 있는 기회를 감지하고 계획을 변경해 이 삼인조 힙합 그룹을 K-팝 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종국에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예리한 감성과 전통적인 아이돌 그룹의 화려한 상업적 매력이 결합된 독특한 7인조 라인업을 완성한 것이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진은 결국 강력한 보컬리스트로 입증됐다.(‘월드와이드 핸섬’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막내이자 가장 다재다능한 보컬 중 한 명인 정국은 이내 올라운드 퍼포머로 성장했다. 그리고 깊은 저음과 모델 같은 외모를 지닌 뷔가 팀에 세련된 도시적 감각을 더했다. 그룹을 완성한 건 훈련받은 댄서 지민이었다. 그는 퍼포먼스 실력과 함께 고음역대의 독특한 목소리를 팀에 더했다. 불과 몇 년 사이, 끈질기게 버틴 언더독 이미지의 신인 그룹은 한국 3대 엔터테인먼트사인 SM, YG, JYP 소속 그룹들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국 내 넘버원 그룹, 곧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인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LA에서 함께 지낸 두 달간, 한집에 다시 모인 소년들은 이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되어, 최고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작업에 매진했다. 마치 초창기 시절처럼, 한 조각의 금을 캐듯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런데 우리는 찾아낸 것 같아요.” RM이 말했다. 그가 언급한 것은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거의 6년 만에 발매되는 그들의 새 앨범으로, 물론 대규모 월드 투어가 동반될 것이다. 이는 최근의 음악 역사에서 가장 간절히 기다린 컴백으로, 1960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열기 가득한 흥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멤버들과 나는 서울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2022년 휴식기에 들어간 이래 처음으로 그룹 단위로 진행하는 인터뷰다. 나는 그들의 동료애 앞에서 단번에 무장 해제됐다. 동료애라는 감정은 편안하면서도, 오랜 시간 공들여 다져온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12월 RM은 하이브의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에서 라이브를 진행하며 컴백을 앞두고 그룹 해체를 “수천 번”은 생각했다고 팬들에게 고백했다. 이 라이브는 엄청나게 글로벌하고, 극도로 전략적이며, 사랑으로 지켜주는 그들의 팬덤 ‘아미 ARMY(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에 충격파를 던졌다.

왼쪽부터ㅣ정국이 입은 셔츠, 보테가 베네타. 팬츠, 드리스 반 노튼. 부츠, 지미 추.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귀고리, 입술 링은 모두 정국의 것. 진이 입은 재킷, 셔츠, 모두 구찌. 슈즈, 지방시 by 사라 버튼. 뷔가 입은 니트, 셔츠, 타이, 모두 셀린느. 슈즈, 베르사체. 시계, 브레이슬릿, 양말, 팔케. RM이 입은 코트, 드리스 반 노튼. 스웨터, 유밋 베넌. 팬츠, 제냐. 슈즈,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귀고리는 RM의 것. 슈가가 입은 셔츠, 이너 셔츠, 타이,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귀고리는 슈가의 것. 제이홉이 입은 재킷, 이너 톱, 팬츠, 벨트, 모두 루이 비통. 부츠, 쥬세페 자노티. 목걸이, 티파니앤코. 반지, 데이비드 율만. 지민이 입은 재킷, 팬츠, 모두 디올. 탱크톱, 짐멀리. 슈즈, 캠퍼랩. 목걸이, 티파니앤코. 귀고리는 지민의 것.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부담이 심해요”, RM이 12월 6일 라이브에서 말했다. “지난달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수면제 처방을 받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수천 번은 고민했다. 팀을 해체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휴식기를 갖는 게 나을까?”

그 부담감을 이해할 만하다. 걸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마지막 정규 앨범 발매 후 거의 6년이 지난 지금, BTS-원래는 방탄소년단 Bangtan Sonyeondan 혹은 Bulletproof Boy Scouts이었으나 이후 비욘드 더 신 Beyond the Scene으로 진화-가 그 긴 기다림만큼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작업을 선보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함께 무대에 선 지 거의 4년이 지난 지금, 그 마법이 여전히 유효할까, 아니면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변해버린 모습은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진 걸까? 여기에 더해, 한국 음악계를 글로벌 팝의 중심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 이들에겐 온 나라의 기대 또한-그리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아미의 열렬한 사랑과 꿈은 말할 것도 없이-걸려 있다.

마주 앉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주로 통역사를 통해 대화를 나누던 중, RM의 위버스 라이브-세계가 목격한 접속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마 그 라이브에 대한 밈이 좀 생겼을걸요.” RM이 웃으며 말한다.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사실 우리 중 그 라이브 영상 본 사람 아무도 없어요.” 뷔가 말한다.

“유튜브 쇼츠나 릴스로만 보죠.” 진이 받는다.

“서로 라이브를 보고 있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슈가가 설명한다. “우린 항상 같이 다니고 형제 같은 사이니까.”

“어떤 면에서는 RM의 아미에 대한 사랑 표현 방식인 것 같아요.” 지민이 덧붙인다. “그가 그룹과 아미를 얼마나 감정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정말 잘 보여주죠. 그런 취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정말 RM다운 행동이었어요.”

“RM은 이 팀의 정체성 같은 존재예요.” 뷔가 말한다. “팀의 핵심 리더니까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저는 보통 그렇게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데, 그는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RM은 멤버들의 여론에 눈에 띄게 감동한 채, 다른 6명을 바라보며 “다정하네요”라고 말한다. “이 친구들 정말 좋아해요.”

그들의 친밀감은 꼭 손에 만져질 것만 같다. 서로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게 확실히 보인다. 지민이 진의 목을 살짝 꼬집자, 진은 장난스럽게 지민의 다리를 톡톡 쳤다. 정국은 자리를 잡고 두 개의 귤과 여러 개의 작은 감자 크래커 봉지를 앞에 놓은 뒤, 답변하는 사이에 열정적으로 씹어먹었다. 한편 이 순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뷔는 스마트폰을 꺼내 다른 멤버들의 사진을 찍었다.

진정한 BTS다운 방식으로, 멤버들은 RM의 위버스 라이브로 촉발된 복잡한 감정을 형제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서로를 놀리며 극복해나갔다.

“우린 서로 위로해주는 타입이 아니에요.” 지민이 말한다. “하지만 그냥 웃거나 그 사람을 놀려서 웃게 만들곤 잊어버리죠···. 우린 같이 술도 좀 마셨어요. 취기는 항상 효과가 있으니까요.”

왼쪽부터ㅣ슈가가 입은 코트, 지방시 by 사라 버튼. 셔츠, 웨일스 보너. 목걸이, 홀슨부. 귀고리는 슈가의 것. 제이홉이 입은 셔츠, 팬츠, 벨트, 모두 루이 비통. 목걸이, 티파니앤코. 뷔가 입은 재킷, 팬츠, 슈즈, 모두 셀린느. 탱크톱, 짐멀리. 목걸이, 시계, 모두 까르띠에.

“앞에서는 그를 놀리지만, 돌아서선 우리도 울고 있을 때가 있어요.” 뷔가 인정한다.

“쟤들이 저런 애들이라니까요.” RM이 웃으며 말한다. “그게 바로 멤버들이 이런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이에요. 네, 밈으로 만들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거죠.”

이들에게는 확실히 함께인 것이 진정한 힘이다. 어마어마한 대중음악계 컴백의 압박감조차도 농담과 형제들이나 할 법한 장난으로 풀 수 있다. 대화 중 갑자기, 뜬금없는 타이밍에 지민이 드라마틱하게 재킷을 벗었는데, 그의 날렵한 몸에 골지 탱크톱이 달라붙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섹시!” 정국이 소리쳤고, 지민은 그 반응을 눈에 띄게 즐기며 과장되게 팔을 구부려 이두근을 자랑하며 튀어나온 근육을 꼬집어 철학적인 대화에 잠겨 있던 멤버들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화보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이 다이내믹함을 목격했다. 뷔는 위즈 칼리파와 스눕 독의 ‘Young, Wild & Free’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마치 합류하라는 듯이 헤어·메이크업 팀의 손길이 닿는 사이 가만히 있어야 했던 슈가를 도발했다. 제이홉이 솔로 포트레이트 촬영을 마칠 때쯤, 마침 스피커에서 드레이크의 ‘Hold On, We’re Going Home’이 흘러나오자 그는 기어코 이 노래를 참지 못하고, 가성으로 “We’re Going Home” 부분을 목청껏 부르며 촬영을 잠시 중단시켰다.(몇 발자국 앞에서 거물급 팝스타 멤버들이 마음껏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듣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 강한 유대감을 공유하며 진정한 그룹으로 소통해요.” 메건 디 스탤리언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이들과 함께 ‘Butter’ 리믹스 작업에 참여했으며, RM과는 그녀의 싱글곡 ‘Neva Play’에서 협업했다. “그러한 수준의 겸손함, 사랑, 팀워크를 가진 어떤 집단을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죠. 특별한 역학 관계예요.”

콜드플레이 리드 보컬 크리스 마틴은 “BTS 일곱 멤버에 대해 느끼는 점은, 그들을 조금 알게 된 바로는, 바로 그 강렬한 (스타가 되는) 과정을 통해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마틴과 콜드플레이는 BTS와 함께 넘버원 히트곡 ‘My Universe’로 협업했다. “그들이 서로를 든든히 받쳐주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들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끈끈하고, 또 서로 잘 어우러져요. 서로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죠. 각자 뚜렷한 역할이 있고···. 그들 간의 사랑은 진짜예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그거였어요, 매우 격렬한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어떤 시점에 가서는 음악이 왜 마법 같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마틴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가 종종 팀을 사랑하는 거겠죠. 진짜 이유는 모릅니다. 왜 7명이 모두 모이면, 각자의 합을 넘어서는 어떤 마법 같은 존재가 되는 걸까요? 그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서로에게 친절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마법이 존재합니다.”

셔츠, 팬츠, 벨트, 모두 루이 비통. 목걸이, 티파니앤코.

“저희는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서로 추천해 주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같은 음악을 동시에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제이홉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그들의 컴백 이야기에 묻혀버린 사실은, 지난 몇 년간 BTS 멤버들이 대부분의 초특급 유명인사들조차도 닿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시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했다.

북한과의 영구적 군사적 갈등으로 인해 열여덟 살부터 스물여덟 살 사이의 거의 모든 한국 남성은 약 18개월에서 21개월간 군 복무를 해야만 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제외하면 대개 면제받지 못한다. 입대 전에는 BTS 멤버들이 면제를 받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사실상 그들은 국보급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입대를 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진이 먼저 입대하고 슈가가 마지막으로 복무를 마치도록 시기를 분산시켜, 솔로 아티스트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BTS 멤버가 항상 존재하도록 했다. 이는 사랑하는 팬덤 아미가 그들의 존재를 그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교하게 계획한 노력이었다.

군 복무를 통해 조교(진, 제이홉)부터 취사병(정국), 특수임무대(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멤버들은 여느 20대 한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슈가는 어깨 부상으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 세계 스타디움을 누비던 그가 이제는 사무실에서 근무 시간을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저는 근무처에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어요.” 슈가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항상 10분 일찍 출근했죠. 그날 해야 할 일을 준비했어요. 처음에는 늘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게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나중엔 제 삶의 일부가 되었죠.”(그 일과는 결국 그의 음악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입대하기 전에는 보통 아주 늦은 밤 시간에 음악 작업을 했는데, 제대하고 나서는 오히려 낮 시간에 곡 작업을 했어요.”)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세계에 적응해야 하는 건, 당연하게도, 힘들었어요.” 제이홉이 인정한다. “하지만 인간은 참 재미있죠. 꽤 빨리 적응하는 법을 배우니까요. 저는 확실히 더 건강해졌고, 삶과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새로운 사람도 많이 알게 된 건 큰 수확이었죠. 그리고 군대에 입대해 복무하는 건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잖아요.”

“정말, 정말 힘들어서 울 뻔했어요.” 지민이 눈물 흘리는 포즈를 하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정말 도전적인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그 입장이 되어 그걸 경험할 수 있었다는 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죠.”

팀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재회 중 하나는 사실 활동 중단 기간 중에 이루어졌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기 전이었어요. 정국이 울었어요,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뷔가 그룹 재결합을 간절히 바랐던 멤버의 마음을 회상하며 말했다. “정국이는 무대에 서고 싶어서, 정말 공연하고 싶어서 울었던 거예요.”

재킷, 팬츠, 슈즈, 모두 셀린느. 탱크톱, 짐멀리. 양말, 팔케. 목걸이, 시계, 모두 까르띠에.

“저희 모두는 개개인보다 BTS를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룹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그게 저희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V

“정국이 무대 공연과 음악에 얼마나 큰 사랑과 열정을 쏟고 있는지 진짜로 느낄 수 있었어요.” 슈가가 덧붙인다.

이 와중에 막내 정국은 모른 척한다. “잘 기억나지 않네요.” 그가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다들 곁에 있어 줬어요.”

떨어져 있는 사이, 일곱 멤버는 각자의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멤버들은 각자 독보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붐뱁 힙합(제이홉의 <Jack in the Box>)부터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 스타일의 파워 발라드(진의 ‘The Astronaut’), 차트 정상에 오른 톱 40 히트곡(정국의 ‘Seven’과 지민의 ‘Like Crazy’)부터 실존적 권태에 대한 내면적 성찰(RM의 앨범 ), 3부작에 달하는 예술적 선언(슈가는 휴식기 동안 자신의 또 다른 자아 Agust D로 세 번째 작품을 발매했다)부터 짧지만 달콤한 EP(뷔의 <Layover>)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BTS 멤버들은 예술적으로 한계를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에리카 바두(RM), 지금은 고인이 된 위대한 사카모토 류이치(슈가), J. 콜(제이홉), 심지어 왕가위 감독과 협업한 바 있는 존경받는 윙 샤(또 다시 RM)와 같은 전설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자신들의 비전을 실현해왔다. 그 결과 일곱 멤버는 각자의 독특한 집착과 점점 더 뚜렷해지는 작업 방식을 지닌 독자적 ‘오토르’(Auteurs, 영화사에서 작가주의적 감독을 일컫는 말)로 성장했다.

팝스타 할시는 2019년 히트곡 ‘Boy With Luv’에서 BTS와 협업했으며, 솔로 앨범과 리메이크 곡 ‘Lilith’ 작업에서는 따로 슈가와 작업했다. 그녀는 각 멤버의 새싹처럼 자라나는 예술성에 주목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솔로 여정을 걸어왔고, 진정한 개성과 강점을 반영해요.” 그녀는 이메일에서 밝혔다. “놀라지는 않았지만, 솔로 작업이 얼마나 세련되게 다뤄졌는지에 정말 감명받았어요. 각자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작곡가로서 그들이 꽃피는 모습을 지켜보고, 각자만의 개성이 전면에 부각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는 거죠.”

“솔로 활동은 일종의 모닝 알람처럼 저를 깨워주는 역할을 했어요.” 지민이 말한다. “우리가 다시 하나로 뭉치기 전에, 더 많이 연습하고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며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다른 멤버들의 무대와 솔로 활동을 보면서 ‘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대단하게 잘 해내고 있네’라고 생각했어요.”

“솔로 작업의 정말 좋은 점은 취향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는 거예요. 특히 이런 음악계의 전설들과 협업할 때 말이죠.” 제이홉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죠.”

“그렇게 해내기까지 제게는 가파른 배움의 성장 곡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 팀으로 뭉친다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경험은 값을 매길 수 없죠.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잖아요.”

왼쪽부터ㅣ지민이 입은 베스트, 팬츠, 모두 디올. 셔츠, 드조첸. 슈즈, 더 로우. 귀고리는 지민의 것. RM이 입은 재킷, 셔츠, 모두 더 로우. 팬츠, 에르메스. 슈즈, 캠퍼랩. 선글라스, 까르띠에. 반지, 데이비드 율만. 귀고리는 RM의 것.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건 팀이라는 걸 알고 있고, 팀으로 시작했기 때문 이라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정말 즐거워요.” – 지민

각자 솔로로서의 폭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시 합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들 마음속에는 한 점도 의심 따위는 없었다.

“우리가 팀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리고 우린 팀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지민이 말한다. “그리고 함께 있으면 정말 재밌어요.”

“우리 모두는 각자 개인으로서의 자신보다 BTS를 더 소중히 여겨요.” 뷔가 말했다. “우리는 팀으로 데뷔했고, 그것이 바로우리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I Love You, Man.” 지민이 뷔에게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면, 난 그런 건 보고 싶지 않아!” 뷔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항상-어쩌면 절대로-이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솔로 활동을 원하면서 엔싱크가 휴식기에 들어갔던 때를 기억하는가? 일시적인 휴식이 결국 영구적인 결별로 이어졌던 것은, 어쩌면 그의 솔로 경력으로 그룹 시절에는 없었던 업계 내 신뢰를 얻었기 때문일까?

혹은 스파이스 걸스가-진저를 제외하고-새 음악으로 활동을 이어갔을 때는 어떠한가? 스파이스 걸스 3집 앨범이 열광적인 기대 속에 발매됐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스캐리, 스포티, 포시가 솔로 활동을 쏟아내면서 앨범을 잠식시켰다.(베이비는 그나마 팀의 메시지를 지켰다.) 그 결과 <Forever>는 참패했고, 예정됐던 월드 투어도 열리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4년 잭슨 가족의 빅토리 투어 사건도 있었다. 장수 가족 그룹이 등장한 듯한 순간이었으나 결국은 그 끝을 알리는 슬픈 트롬본 소리처럼 사그라졌다. 투어 중에 형제들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해,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헤드라이닝 공연에서 마이클 잭슨은 <Thriller>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돌연 “우리가 함께 공연하는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팝 음악 역사에서 휴식기를 가진 후 성공적으로 재결합한 그룹보다는 팀 내 갈등과 솔로 활동 유혹 등으로 해체된 위대한 그룹의 사례가 훨씬 더 많다. BTS 일곱 멤버 모두가 아티스트로서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여 팀으로서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승리다. 멤버들은 점점 더 각자의 열정과 아주 개인적인 예술성을 지니고 있으며, 바쁜 개인의 삶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은 그냥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게 다예요.” 할시가 말했다. “서로 존중하며 모든 사람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포용하죠. BTS가 추구하는 비전은 정말 명확해서 모두가 목표를 알고 있는데, 또 각자의 강점이 그 핵심 비전을 뒷받침하며 정말 탄탄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자기중심적인 분위기가 전혀 아니에요. 그들이 BTS로 활동하고 팬들에게 보답하는 데 얼마나 집중하는지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신 앞에서의 맹세와도 같은 우정과 아미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한다고 말하고는 결국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코트, 아미리. 셔츠, 웨일스 보너. 귀고리는 슈가의 것.

“이대로 계속할 수 있다면, 아마 60대에도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의지만 있다면, 50대든 60대든 언제나 함께 밴드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슈가


어떤 면에서 보자면, RM에게는 모든 것이 바뀌었던 때가 2022년 그래미 어워즈였다.

BTS는 중독성 강한 노래 ‘Butter’로 후보에 올랐으며, 방송 초반 선보인 눈부신 무대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2년 연속 그래미 후보로 지명된 터였다. 그 공연은 때로는 답답하고 딱딱하게 진행된 행사에 빈틈이라곤 없는 방탄 수준의 효율성과 전염성 있는 동료애의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결국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서 패배한 결과(히트 듀엣곡 ‘Kiss Me More’의 도자 캣과 SZA가 수상했다)로 이어지자, 팬들은 더욱 실망했다. 팬들은 즉시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scammys를 유행시키며 시청률 끌어올리는 데 그룹이 이용당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RM은 그날 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레이디 가가가 친구이자 멘토인 토니 베넷에게 바친 극적이고 감성적인 헌정 무대와 H.E.R.이 레니 크라비츠, 트래비스 바커와 함께 선보인 전율적인 메들리를 보며, 그는 음악에 평생을 헌신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선보인 ‘Butter’ 공연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공연 두 달 후 위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다시 고민해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이 그룹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룹의 모습이 무엇인지, 심지어 제 자신조차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그는 이어 말했다. “앞으로 BTS가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요? 지금 이 시점에서 BTS가 어떤 입장을 취했다고 기억되어야 할까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그날 저녁으로부터 4년여가 지난 오늘, 나는 멤버들과 함께 앉아 그룹의 리더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개개인의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도 성장한 채로-앞으로 BTS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까?

RM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서 질문을 곱씹었다. “BTS의 13년 여정은-개인적으로 저에게는-‘나는 이 팀을 알아’ 라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그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나머지 멤버들을 구성하는 데 중심으로 삼았던 창립 멤버로서, 눈빛이 반짝이던 열여섯 살의 연습생 RM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했다. “이 팀은 저, 바로 저 자신과 함께 시작했어요. 그리고 일은 그렇게···, 음, 모르겠네요···.”

“회사, 레이블이 훨씬 더 커졌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지고 있어요. 플랫폼이 바뀌었고, 기술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요, 가속화되고 있죠.”

10년 전, 이 그룹에게 성공은 단순히 차트 1위를 의미했다. 진은 인기 있는 한국 TV 음악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땐 1위가 되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쁠 것 같았어요. 그 후로 우리는 아티스트로서 성장했죠···. 우리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그 시절에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 RM이 특유의 솔직한 방식으로 말한다. “그래도 이 혼란 속에서 작은 황금 조각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 명확함을 얻기 위해 그룹은 BTS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로라는 근본. 그들은 처음으로 송캠프에 들어가, 음악계 최고의 작곡가 및 프로듀서란 이들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을 했다.

재킷, 청바지, 모두 아미리. 셔츠, 드조첸.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
셔츠, 드조첸. 팬츠, 디올. 브레이슬릿, 반지, 모두 데이비드 율만.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귀고리는 지민의 것.

송캠프에서는 업계 최고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러 개의 작업실에 나뉘어서 팝 음악계의 최정상 아티스트들을 위한 차트 정상을 노리는 곡과 팬들이 열광할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는 현대적 팝 음악 개념이 생겨난 이래 계속 이어져 온 전통으로, 브릴 빌딩(Brill Building, 뉴욕 브로드웨이의 이 빌딩에서 1960년대에 음악 레이블, 작곡가들이 대거 입주해 히트곡을 양산해내던 시대를 대표하는 용어)식의 경쟁과 베리 고디의 히트빌 U.S.A.(Hitsville U.S.A., 모타운 레이블 설립자 베리 고디의 첫 번째 스튜디오 이름. 모타운 레이블 황금기에 이곳에서 히트곡이 대량 생산됐다)에서 채택한 조립식 작곡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TS의 초기 커리어에서는 RM, 슈가, 제이홉으로 구성된 랩 라인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주도하며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멤버들 역시 독자적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성장해 이제는 다수의 작사·작곡 및 프로듀싱 크레디트를 보유하고 있다. 멤버들이 각자 활동하면서 더욱 굳게 다져진 예술적 성숙도는 이번 앨범 작업에 흥미로운 영향을 미쳤다.

“우리 모두 여전히 음악을 쓰고 창작하는 데 큰 열정을 품고 있어요.” 슈가가 말했다. “곡마다 다르긴 한데, 한 멤버가 주도적으로 곡 작업에 기여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지민은 음악 소프트웨어 QBS로 새로운 기법을 배우며 자신의 역량을 확장했다.

정국은 캠프에서 보내는 루틴을 즐겼다. “스튜디오에 방이 세 개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가 말한다. “가끔은 2명이서 짝을 지어 스튜디오 방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때로는 혼자 들어가기도 했고, 그런 다음 짝이 될 멤버를 바꿔보면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협업 방식을 시도했죠. 그건 우리 식의 틀을 깨는 방법이었어요. 때로는 정말 별로인 쪽으로 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잘 풀리기도 했죠. 하지만 전체 과정 자체가 굉장히 자유롭고 해방감을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정말 즐거웠어요.”

진은 어린 멤버들의 열정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동생들은 정말 끈질기더라고요.” 그가 말했다. “열정이 넘쳐흘렀어요.”

3월 20일 발매 예정인 새 앨범에 대한 추측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미 아미들 사이에서는 맥스 마틴(Max Martin, 스웨덴 출신 전설적인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Baby One More Time’부터 ‘Blinding Lights’까지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과 존 벨리온(Jon Bellion, 마일리 사이러스의 ‘Midnight Sky’, 저스틴 비버의 ‘Ghost’ 등을 작곡) 같은 저명한 작곡가들이 이번 프로젝트의 협업자로 추측되고 있다는 말이 오간다.

멤버들은 앨범에 대해 너무 많은 세부 사항을 공유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그들이 말할 수 있는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하게 들렸다. 슈가는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들어오신 BTS의 앨범 및 사운드와는 상당히 다를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번에는 더욱 성숙해진 BTS의 모습을 보게 될 거예요”라고 전했다.

“진짜 모든 요소를 다 담았다고 할 수 있어요.” RM이 말한다. “이번 새 앨범은 어떤 헷갈리던 점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거라고 확신해요.”

인터뷰를 나눈 2주 후, 나는 이들로부터 앨범 제목에 관한 메시지를 받았다. 그들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대국민적 곡으로 국가의 역사를 반영하기도 하는 ‘아리랑’을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그룹인지,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징하는 이름을 원했다. “‘아리랑’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한국의 전통 민요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연결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감정을 상징해왔습니다”라고 그들은 적었다.

이 그룹의 현재 챕터에 딱 들어맞는 이름인 듯하다. 아미, 그리고 멤버들 서로가 다시 합쳐진 순간을 담은 이름이다. 또한 그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이 순간에, 일곱 멤버가 세계의 시선을 자신들의 뿌리, 즉 그들을 키워낸 나라로 돌리겠다고 선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돌아보면 BTS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 수많은 팬이 감정적으로 완전히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타고난 능력을 항상 가지고 있었으니까.

멤버들은 솔로 활동에서 현대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두려움 없이 다뤄왔다. 예를 들어 불안하고 날것에 가까운 또 다른 자아 어거스트 D로 활동하며 정신 건강과 사회적 압박을 다룬 슈가의 작업이나, 앨범 전체가 곧 자기 수용에 대한 명상이었던 RM의 <Right Place, Wrong Person>이 그랬다. 팀으로서의 다음 장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성숙해진 모습과 세상이 기대하는 사운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로울 것이다.

“K-팝 산업 안에서 아이돌 그룹, 보이 밴드, 걸 그룹으로 활동하다 보면 삶의 부정적인 측면을 표현하는 데 다소 제약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해요.” 슈가가 말했다. “하지만 아티스트이자 한 개인으로서 삶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에는 많은 성찰과 생각이 담겨 우리가 서서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많은 것이 이미 변했고, 우리는 여전히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현재 어떤 음악적 방향성을 추구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로, 나는 그들에게 지금 가장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뷔는 그룹과 협업했던 누군가가 실험적인 래퍼 진 도슨 Jean Dawson의 음악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가와서 정말 큰 충격을 줬어요.” 뷔가 말한다. “음악이 어떻게 흐를 수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BTS로 막 시작했을 무렵, RM, 슈가, 제이홉은 BTS 숙소에서 임시 힙합 학교를 열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투팍이나 나스 같은 거장들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약 50명의 아티스트 목록을 주곤 빠져들게 했다. 이건 빅히트 연습생으로서의 정규 연습이 끝난 후에 진행됐다. 어떤 밤에는 자발적으로 ‘방탄’ 멤버들이 밤 11시에 리허설이 끝난 다음부터 새벽 6시까지 “힙합 학교” 수업을 진행하며, 음악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잠을 포기하기도 했다.

음악적 발견에 대한 사랑을 공유한다는 건 그룹의 역동성에 기초가 되어줬고 현재까지도 이어져 온 요소다. 요즘까지도, BTS 멤버들이 각자의 소셜 미디어에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동시에 게시하곤 하는 모습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지난여름에는 몇 주 사이에 제이홉, RM, 뷔, 정국이 모두 화제의 얼터너티브 R&B 아티스트 디종 Dijon의 곡을 소셜 미디어에 올린 적이 있다.

“우린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서로 추천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음악을 좋아하게 되곤 하죠.” 제이홉이 말했다. “취향이 각자 다르긴 한데, 겹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그의 취향 면에서, 제이홉은 현재 로살리아의 아방가르드한 앨범 에 푹 빠져 있다.)

어느새 음악 이야기에 흥분한 남자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돌아가면서 보여준다. 바로 ‘스포티파이 랩드 Spotify Wrapped’였다.

“저는 스물네 살이에요.” 정국이 말한다.

“스무 살.” 제이홉이 말한다.

“저는 일흔일곱 살이네요.” 슈가가 말한다.

“저는 여든여덟 살.” 뷔가 말한다.

“여든아홉.” 지민이 말한다. “할아버지!”

베스트, 팬츠, 모두 베르사체. 셔츠, 이든 루이. 시계, 위블로. 입술 링은 정국의 것.

“전체 과정이 매우 자유롭고 해방감을 줘서 정말 즐거웠어요.” – 정국

BTS의 성공은 K-팝 윗세대 선배들이 이룬 진보를 토대로 했다. 서양의 혁신적인 팝 음악을 현명하게 접목한 점, 반복해서 볼수록 매력이 드러나는 밀도 높은 시각적 스토리텔링, 기술의 전략적 활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들만의 진정성과 공감대 형성을 더했다. 과거 K-팝 스타들이 정교하게 완성한 접근 불가능성으로 감탄을 자아냈다면, BTS는 스스로 알리기를 선택했으며, 바로 이 특성이 그들로 하여금 장르를 완전히 초월할 수 있게 했다.

2024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이사는 자신의 전략은 “팬덤에게 가장 친근한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TV 출연에 의존하기보다 데뷔 전부터 전용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멤버들이 직접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며 영상 블로그를 통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걸 허용했다. 가장 힘든 순간도 영상으로 기록하고, 술에 취해 밤새 놀러 다닌 이야기도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렸다. “가짜 아이돌이 되길 원치 않았다”면서 방시혁은 말했다.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는 BTS를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팬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이 아미를 탄생시켰다. 현대팝 음악에서 팬덤 군단은 거의 당연한 존재다. 그들은 헌신적이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종종 팝스타의 길거리 홍보팀 역할을 하고, 때로는 같은 투어에서 여러 공연 회차를 보기 위해 수천 달러를 지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미는 이것을 더 깊고 강력하며, 심지어 이타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그들은 정기적으로 자선 모금 활동을 조직하며, 할시처럼 BTS와 협업한 아티스트들을 위한 활동도 포함된다.)

지난해 아미는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소통 방식의 하나로, 7년 전 BTS 노래를 다시 차트 정상에 올려놓았다. 2018년에 발매한 싱글 ‘Anpanman’은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와 75개국 이상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기록을 멤버들에게 언급하니 그들은 눈에 띄게 감동했다. “정말 감동이에요.” 지민이 말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이 너무나도 조건 없는 것이어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어요. 항상 어떻게 더 나은 무대와 더 좋은 노래로 보답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건지 알기조차 정말 힘들어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느낌이에요.” 지민이 말을 이었다. “이건 굉장히 상호적인 관계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미에게 영향을 주지만, 아미 역시 우리에게 영향을 주거든요. 양방향이에요. 이런 것들을 느낄 때면, 팀으로서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정말 깊이 고민하게 돼요. 우리가 하는 말은 영향력을 갖고 있고 아미에게 큰 의미가 되니까요.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꼭 주고 싶어요.”

미국에서 이들이 성공한 초창기에는 서양 매체들이 아미를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듯한 표현을 고수하는 듯했다. 마치 한국에서 온 일곱 소년의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젊은 애들의 경박함과 고조된 호르몬뿐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아미는 다양한 국가, 세대, 성별 표현을 가진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일단 가장 먼저, 내 인생 주변에서 만난 아미들을 보면 안다. 마닐라에 거주하는 시각 예술가이자 사운드 디자이너, 영화 작업으로 선댄스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으며 싱가포르부터 뉴욕까지 전 세계에서 작품을 내거는 아티스트부터, 세계 최대 기업 중 한 곳에서 늘상 대규모 거래를 중개하는 한편 일하지 않을 땐 BTS 콘서트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서 전 세계를 도는 시애틀 기반의 테크 기업 임원까지.

그리고 내 어머니, 제임스 테일러나 캐롤 킹 같은 싱어송라이터의 음악만 좋아하는 분으로만 알고 있던 그녀가 아무 연결고리도 없다가 갑자기 자신은 아미의 자랑스러운 멤버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처럼 어머니도 팬데믹 기간에 BTS를 사랑하게 됐다. 할머니께서 뇌졸중을 여러 번 겪으신 후 우리 집으로 오셨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간병인이 됐다. 어머니는 팔순이 넘으신 할머니를 24시간 돌보는 데 온 에너지를 쏟으셨다. 그 어두운 시간 동안,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는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억지로 깨어 있어야 했던 밤마다 어머니는 스마트폰으로 BTS의 영상을 보셨다.(어머니는 꼭 공식 BTS 채널에서만 영상을 시청해 조회수가 반영되도록 하셨다.) 그들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 위안을 주고, 순수한 선함이 희망을 주었다. “그들이 그 늦은 밤 내 곁을 지켜줬어.” 지금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온갖 고난이 가득하더라도, 그들의 영상을 보면 잠시나마 웃음이 나더라.”

왼쪽부터ㅣ정국이 입은 재킷, 프라다. 셔츠, 톰 포드. 팬츠, 베르사체. 귀고리, 입술 링은 모두 정국의 것. 진이 입은 재킷, 토드 스나이더. 셔츠, 드조첸. 진, 아미리. 브레이슬릿, 반지, 모두 프레드.

팀으로서 지금까지 냈던 것 중 가장 성숙하고 사운드적으로 야심 찬 앨범을 발매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그래미상이 여전히 어떤 정점을 상징하는지, 트로피를 받는 것이 여전히 목표인지 물었다. “모르겠어요.” RM은 말한다. “시간이 흘렀잖아요. 전반적인 영역에서 K-팝 관련 후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정말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제 말은, 우린 해볼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앨범을 그래미에 다시 출품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르겠어요, 우리가 그걸 필사적으로 갈망하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아, 그래미 받고 싶어요’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우리가 아예 원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고요, 해볼 거예요. 그런데 안 된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거죠.”

이들에게 이제 목표는, 실제 트로피 그 자체보다 그룹이 나아갈 방향의 북극성 같은 지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보통 그룹은 4명이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7명이에요. 이런 팀에는 때론 계속 나아가기 위한 어떠한 목표가 필요해요.” RM이 말을 이어간다. “그래미는 우리가 과거에 제대로 이루지 못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다시 함께 여기 모였다는 점, 전 세계 팬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점이에요.”

마지막 정규 앨범 발매 이후 거의 6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상승곡선은 계속될 수 있을까? ‘황제의 시기’란 그룹의 일생 중 단 한 번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펫 샵 보이즈의 닐 테넌트가 1987년에 낸 그들의 대표작 <Actually> 리마스터링을 앞두고 2001년에 크리스 히스 Chris Heath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 그는 1980년대 후반 아마도 팀의 전성기였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었다. 당시 펫 샵 보이즈는 ‘황제의 시기’를 누리며 시대적 감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그 어떤 시도도 실패하지 않는 듯했다. <피치포크>에 실린 음악평론가 톰 유잉 Tom Ewing의 정론 에세이는 이 ‘황제기’라는 개념을 확고히 했다.(팝 역사에서 ‘Rumours’를 발매했을 때의 플리트우드 맥, ‘Faith’를 냈을 때의 조지 마이클, 그리고 부터 앨범 초기때까지 마이클 잭슨을 떠올려보라.) 그는 이렇게 썼다. “이 개념에는 양면성이 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오만함과 피할 수 없는 쇠퇴가 공존한다. 황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벌거벗은 모습으로 끝난다는 것. 그 시대는 항상 종말을 맞이한다.”

재킷, 셔츠, 모두 더 로우. 팬츠, 에르메스. 선글라스, 까르띠에. 귀고리는 RM의 것.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다시 이렇게 함께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 팬 여러분을 만나 뵙겠습니다.” – RM

물론 규칙에는 늘 예외가 존재한다. 그리고 BTS는 끊임없이 모든 팝 음악의 규칙을 깨는 예외로서의 자신들을 계속 증명해왔다. 그들은 빅3 소속사 아티스트들과 경쟁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약체 K-팝 그룹이었고,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되는 듯했으나 글로벌 돌풍을 일으켰다. 만약 현대의 어떤 인기 그룹이 불가능한 확률에 맞선다면, 그 주인공은 바로 그들일 것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비틀스나 슈프림스 정도만 의미 있게 비교될 수 있는 종류다.

비틀스가 한 나라의 음악 산업을 글로벌 팝의 중심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듯이, BTS도 마찬가지였다. 모타운의 대표 걸 그룹이었던 슈프림스처럼, 이 팀의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와 중독성 강한 후크는 인종적 장벽을 허물고 주류 문화에서 아시아인이 돋보이게끔 위상을 높이는 길을 닦아 지속적으로 세상이 변화하는 데 확실한 효과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해왔다. BTS가 미국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며 비틀스와의 비교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통계 때문만이 아니다. 이것은 진정한 세대적 영향력, 그리고 또한 분열된 시대에 문화적인 합치에 가장 근접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BTS 멤버들은 처음부터 명성의 덧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데뷔 후 시간이 얼마큼 지났건 간에 그냥 모든 신곡 발매를 다 “컴백”이라 부를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유행도 빠르게 변하는 K-팝 업계에서 그들은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주어진 건 없다고 생각한다. 데뷔 백 일을 넘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모든 싱글, 모든 컴백은 반드시 대히트를 기록해야만 회사에 경제적 이익을 돌려주고 그룹이 해체되지 않을 수 있다.(이런 면에서 그들의 관행은 2000년대 영국 팝 음악계와 유사하다. 당시 슈가베이비스나 걸스 알라우드처럼 나름 한 세대를 대표하는 그룹들조차 놀랍게도 그들의 그 긴 커리어 내내 싱글 한 곡, 한 곡이 꼭 성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왼쪽부터 | RM이 입은 코트, 드리스 반 노튼. 스웨터, 유밋 베넌. 팬츠, 제냐. 슈즈,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귀고리는 RM의 것. 진이 입은 재킷, 셔츠, 모두 구찌. 슈즈, 지방시 by 사라 버튼. 정국이 입은 셔츠, 보테가 베네타. 팬츠, 드리스 반 노튼. 부츠, 지미 추.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귀고리, 입술 링은 모두 정국의 것. 슈가가 입은 셔츠, 이너 셔츠, 타이,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귀고리는 슈가의 것. 지민이 입은 재킷, 팬츠, 모두 디올. 탱크톱, 짐멀리. 슈즈, 캠퍼랩. 목걸이, 티파니앤코. 귀고리는 지민의 것. 제이홉이 입은 재킷, 이너 톱, 팬츠, 벨트, 모두 루이 비통. 부츠, 쥬세페 자노티. 목걸이, 티파니앤코. 반지, 데이비드 율만. 뷔가 입은 니트, 셔츠, 타이, 모두 셀린느. 슈즈, 베르사체. 시계, 브레이슬릿, 양말, 팔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그때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진

“BTS는 혁신가들이라 생각해요.” 할시가 말했다.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개척해나갈 테니까요···. 주위의 온갖 것은 세대를 대표하는 정도의 뮤지션에게는 일종의 ‘배경 소음’ 같은 거예요. 그들은 앞날을 바라봤을 때 진짜 중요한 소리를 크게 내는 법을 알고 있어요.”

2013년 9월, BTS 데뷔 백 일을 맞이했을 때 그들은 특별 라디오 방송으로 이 순간을 자축하며, 케이크를 준비해서 서로에게 “Congratulations”을 신나게 불러줬다. 거의 13년이 지난 지금 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후에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단 것이 희한하기만 하다. 한국에서의 대히트도,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 도움을 준 열성 팬덤도, 지금의 개척자이자 슈퍼스타로서의 지위도 모두. ‘방탄소년단’은 그저 소년들일 뿐이었다. 가능성을 꿈꾸며, 최선을 바랐던.

방송에서 슈가는 한국어로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데뷔한 지 정확하게 백 일이 됐는데요, 항상 옆에서 함께해주신 아미분들이 있어서 저희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멤버들을 바라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 백 일, 천 일, 만 일 동안 함께해요!” 망설임 없이 멤버들 모두 한 목소리로 답했다. “함께해요!”

이들의 화려한 컴백을 앞둔 지금 멤버들과 마주 앉아, 나는 여전히 그런 기분이 드는지, 앞으로 다가올 백 일, 천 일, 만 일의 날들이 여전히 약속된 것처럼 느껴지는지 슈가에게 물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연예계 데뷔 초창기에는 일이 너무 많고 업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꽤 짧을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슈가는 함께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에 저는 ‘우리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걱정했죠.”

“하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주 좋은 친구 사이입니다. 팬들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우리를 원하며, 지지해줍니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아마 60대가 되어서도 춤을 출 수 있을지 모르죠···. 우리가 의지만 있으면-아마도 50대, 60대까지도-우리는 언제나 팀으로 함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는 이미 생의 일부를 함께해온 여섯 멤버를 바라보며 미소를 띤 채 슈가가 말한다. “무릎에 좀 무리가 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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