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파트너’ 여성 오피스 드라마로 재탄생한 ‘사랑과 전쟁’
드라마 <굿파트너> 1회. 로스쿨을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한 한유리(남지현)는 기업팀이 아니라 이혼팀에 발령받은 게 못마땅하다. 투덜대는 그에게 동료들은 짓궂은 얼굴을 하고 이혼 소송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대사는 2020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며 이혼 콘텐츠 유행에 기여한 최유나 변호사의 발언을 연상케 한다. 당시 그는 “이혼 사건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한테만 비밀 얘기를 해주시는 게 특권처럼 느껴지고, 제가 공부한 것들로 더 빨리 이혼을 잘 시켜드려서 (인생이) 나아지게끔 해드린다는 게 재미있었어요”라고 했다. 그 최유나 변호사가 바로 <굿파트너> 각본가다.
작가가 수천 번의 소송 경험에서 응용한 극적인 사건, 다양한 인간성, 결혼과 이혼에 대한 남다른 통찰은 이 드라마의 첫째 재미다. 회사 직원과의 메신저 대화에 ‘ㅅㅅ, ㅋㄷ, ㅇㄹ’ 등의 약어를 사용하다 들키자 ‘석식, 카드, 음료’라고 둘러대는 불륜남 에피소드 같은 건 경험 없이 나오기 힘든 유머다.
<굿파트너>의 신입 변호사 한유리는 이혼 소송을 기업 소송보다 덜 중요한 일로 여긴다. 그는 사회인으로도 미숙하다. 첫 등장부터 팀장 차은경(장나라)에게 기업팀에 가고 싶다고 호소할 때까지, 그는 줄곧 서술부를 생략한 어설픈 문장을 구사한다. 반면 차은경은 강연과 방송 출연으로 바쁜 스타 변호사이자, 해당 로펌에 큰돈을 벌어주고 있는 에이스이며, 최근에도 1,600억원짜리 이혼 소송에서 승리했다. 그런 차은경을 눈앞에 두고도 한유리는 뭘 배울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신입이 두 명이나 그만두는 바람에 곤란해진 차은경이 “이혼 소송에서 열 번 승리하면 기업팀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한유리는 일을 시작한다. 차은경과 한유리의 다이내믹한 관계, 그를 통해 두 사람이 변호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인간미와 정의감이 살아 있지만 세상은 잘 모르는 신참, 성공은 했지만 차가운 상사 조합은 오피스 드라마의 흔한 패턴이다. 한유리가 이혼 소송을 ‘의뢰인 하소연이나 들어주는’ 시시한 일로 여기면서도 그 일에 뛰어드는 모습에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계를 무시하면서도 시사지에 가려고 패션지에 먼저 발을 담그던 앤 해서웨이가 떠오른다. 반면 차은경은 많은 한국 직장 여성 드라마에 영감을 준 ‘악마’ 메릴 스트립을 닮기에는 사람이 무척 좋아 보인다. 그가 타인의 감정이나 정의 구현보다 승리에 관심이 크고, 후배들에게 무섭기로 악명이 높고, 그리하여 화려한 성공을 거머쥔 여성인 건 맞다. 저 혼자 정의감에 불타서 헛발질하는 한유리를 정색하고 꾸짖을 때면 서늘한 카리스마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차은경은 자기가 업적을 쌓은 분야를 무시하면서 딴 팀으로 보내달라 징징거리는 신입과 차분히 협상을 하고, 그 신입에게 차와 시계와 좋은 가방을 가져야 할 이유를 친절히 가르쳐주고, 그가 거절하는 성공 보수도 알뜰히 챙겨준다. 참을성도 대단하고, 자기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한유리에게 굳이 원 포인트로 떠먹여주는 조언도 적절하다. 대체 앞서 그만둔 신입들은 뭐가 불만이었을까 궁금할 정도다. 차은경의 인간적 매력 때문에 이 드라마가 얄팍한 악녀와 선녀 구도를 벗어난, 여성의 유능함과 우정에 대한 입체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첫 주 에피소드에서 한유리는 의뢰인의 인상만 보고 “저 남자 바람피우는 게 분명하니 합의로 마무리하라”는 차은경의 조언을 거절하고 소송을 진행했다가 의뢰인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자신 때문에 한 여자의 인생이 망가졌다는 죄책감도 느낀다. 어설픈 정의감이 불의로, 통찰 없는 휴머니즘이 안티 휴머니즘으로 귀결되는 순간이다. 한유리는 위자료와 양육권을 거래하는 게 부당하다고 길길이 뛰다가 “그거야말로 가난한 의뢰인들이 돈과 아이를 모두 지키는 방법”이라는 차은경의 해설을 듣고 멍해지기도 한다. 한유리와 차은경 역시 가정 사건의 당사자들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유리는 아버지의 불륜으로 어머니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차은경은 현재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
가사 사건은 이처럼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법대로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고,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로 인한 피해가 정서, 양육, 가계, 커리어, 나아가 생존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기도 하다. 차은경과 한유리는 우리가 그 토끼 굴을 어느 때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장나라, 남지현이 그 역을 맡고 있어서 더욱 믿음이 간다.
드라마 <굿파트너>는 7월 12일부터 금·토 오후 10시 SBS에서 방송된다. 스트리밍은 넷플릭스, 웨이브, 시리즈온, U+모바일 tv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