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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케팅 성공했어요?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기분은 내게 매크로 프로그램이 없어서일까? 국내 공연예술계는 과연 모두에게 열려 있는가. 무엇이 암표를 부르는가.

글 /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17년째 공연예술 관련 글을 쓰다 보니 주로 받는 질문이 “요즘 뭐가 재밌어?”다. ‘뭐’라는 지시대명사는 시간이 흐르며 뮤지컬이라는 구체적인 매체로, <헤드윅>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정확한 작품명으로 이어졌다. 높아진 관심만큼 ‘티켓 양도’ 관련 글도 자주 보인다. 공식 예매처를 통하지 않은 티켓 불법 거래에 대한 제작사의 경고에도, 티켓 양도 정보만 전달하는 SNS 계정이 있을 정도로 티켓 거래는 일상적이다. 일반적으로 티켓 예매가 공연 개막 한 달 전에 시작되어 관람의 변수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걸 생각할 때, 양도 양수는 (관객 입장에서) 합리적인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암묵적 룰이 깨지며 시작된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부정 예매가 늘어났고, 정가를 웃도는 프리미엄 티켓도 많아졌다. 관객의 간절함을 이용한 사기 피해 사례가 국정감사장에서도 들린다. 어차피 할 거라면 안전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비스가 ‘티켓베이’다. 2015년에 시작해 9년째 운영 중인 티켓 중개 거래 플랫폼이다. 쉽고 안전한 거래를 표방하지만, 티켓베이 역시 ‘프리미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석 7만원으로 책정된 작품의 티켓이 VIP로 둔갑해 10만원에 거래되거나, 재관람 할인으로 30퍼센트 저렴한 티켓을 구매해서 60퍼센트의 차액을 남기려는 이들도 있다. 불법 티켓은 팔지도 사지도 않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티켓 거래 행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고파는 일은 당연하며, 무엇보다 ‘보고 싶다’라는 욕망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괘씸해도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왜 암표를 만드는지를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이브 콘텐츠는 한정된 시간을 점유하며 경험을 소비한다. 이러한 특징이 라이브 콘텐츠를 빛내지만, 같은 이유로 불법 거래가 생겨난다. 많아야 4회인 대중가수의 콘서트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친선 스포츠 경기에서도 암표는 성행한다. 올 3월에 있었던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의 프리미엄 티켓은 한 장당 2백만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일본 팬은 오타니 쇼헤이 소속 LA다저스 경기 티켓이 포함된 5백만원짜리 2박 3일 패키지여행 상품으로 서울에 왔다. 최근에는 인기 드라마 종영 후 열리는 배우들의 팬 미팅이 주요 타깃이다. 내한공연과 스포츠, 영화 무대인사에 이르기까지 라이브 콘텐츠라면 불법 거래의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대표적 경험 콘텐츠인 연극·뮤지컬은 어떨까. 유명 배우가 출연할수록(아이돌 > 실력파 가수 > 최근 영상 매체에서 주목받은 무대 배우 > 넓은 공연계 팬덤을 가진 무대 배우), 검증된 작품일수록(해외 라이선스 대극장 뮤지컬 > 유명인이 출연하는 연극·뮤지컬 > 입소문이 난 창작극) 불법 티켓 거래가 많다.

최근 공연계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은 뮤지컬 <시카고>다. 2024년 <시카고>는 현재 공개된 두 달 치 공연 모두가 전석 매진인 상태로, 티켓베이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작품이다. 인기의 중심에는 ‘묵찌빠 아저씨’ 최재림이 있다. 그가 2023년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과 MBC <나 혼자 산다>에 나온 후, 그를 디깅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재림은 공연계의 대표적인 다작 배우로, 그동안 희극과 비극, 클래식과 록 발성, 속물 변호사부터 드래그 퀸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의 다양한 작품에 숏폼 콘텐츠의 유행이 더해지면서 최재림은 ‘밈’이 됐다. 대중의 호기심은 2000년에 국내 초연해 올해로 24년 된 <시카고>를 단번에 화제의 중심으로 데려왔다. 특히 이번 시즌이 최재림의 두 번째 <시카고>라는 것, 함께 출연하는 아이비와 티파니 영이 오래도록 대중에게 더 익숙한 아티스트였음을 떠올리면 이 흐름은 기존 분석의 틀을 가볍게 넘어선다.

뮤지컬 시장은 2001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오랫동안 검증된 작품은 물론 ‘뉴 뮤지컬’로 지칭되던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국내에 빠르게 소개됐고, 창작 뮤지컬의 수준도 높아졌다. 2015년 즈음부터는 무대 배우의 영상 매체 진출이 많아졌다. 전미도와 곽선영, 진선규와 이규형 등이 뛰어난 연기로 활약했고 박강현과 조형균, 고은성과 이충주는 JTBC <팬텀싱어>를 거치며 뮤지컬 배우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김준수와 박효신 등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뮤지컬을 시작한 관객의 경험도 벌써 10년 이상 누적된 상태다. 보호자와 함께 아동 뮤지컬과 대극장 뮤지컬을 경험한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더 이상 공연예술이 낯설지 않고 그들 역시 자라 실구매자에 가까워졌다. 최근에는 영화·드라마 산업의 위기와 화제성에 목마른 연극계의 니즈가 결합하며 전도연과 손석구, 유승호를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점점 관객층이 넓어졌고,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이 무대에 쏠렸다. 한정된 좌석을 나눠야 하는 관객 사이의 경쟁도 더욱 심해졌다. 불법 티켓 거래는 성공한 시장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라이브 콘텐츠에서의 불법 티켓 거래는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연극·뮤지컬 시장만의 독특함이 있다. 거래의 70퍼센트가 넘는 좌석이 1, 2열이라는 점이다. 실제 예매 가능한 좌석이 남아 있어도 프리미엄이 붙은 1, 2열의 티켓이 티켓베이에 등록되어 있다. 소극장 창작 뮤지컬과 연극도 마찬가지다. 거래의 관점이 작품 관람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가깝게’ 보느냐에 있다는 얘기다. 좋아하는 존재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이 ‘작품’이라면 배우는 구성요소 중 하나여야 한다. 무대 위 공간이 전하는 분위기, 서로 다른 인물이 나누는 관계의 깊이, 조명이 표현하는 다양한 감정, 시대를 상상하게 하는 음악 등과 같이 말이다. VIP석은 무대 위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감상하기에 최적화된 자리로 설정되었고, 그것이 1열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1열 사수’를 목표로 티케팅을 한다. 한 인물 혹은 한 배우에게만 집중된 관람이 문제인 것은 작품의 여러 맥락이 지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연예술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다시 볼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성격의 불법 거래를 단지 관객의 문제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시장은 오래전부터 배우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문제는 ‘모객’이 목표가 되자 작품과 배우의 교집합보다는 화제성과 관객 동원력을 우선으로 한 캐스팅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배우들 사이 양극화가 심해졌고, 앙상블에서 시작해 주연이 되었다는 서사는 유물에 가까워졌다. 제목만 바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변화 없는 연기와 잦은 겹치기 출연 역시 관객 몰입을 깨는 요소다. 사진으로만 채워진 프로그램북 역시 작품 이해를 돕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관객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배우일 수밖에 없다. 원론적이지만, 그래서 온전히 작품으로 인식되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작품 자체가 독립적인 브랜드가 됐을 때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나 된 배우들의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한 음악극 <섬: 1933~2019>는 배우 보러 갔다가 작품에 반했다는 평이 다수였다. 관람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연극 <벚꽃동산> 역시 전도연의 연기만큼 독특한 무대 디자인과 연출에 대한 감상이 많았다.

‘암표’를 떠나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커진 시장만큼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졌는가. 연극과 뮤지컬이어야만 하는 특별함이 있는가. 지금의 배우들은 작품을 얼마나 공부하고 표현하는가. 새로운 인재를 찾을 수 있는가. 더불어 티케팅이 공연 관람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극장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가도 물어야 한다. 장애인 관객에게 극장은 여전히 불친절한 곳이다. 몇 안 되는 휠체어석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뮤지컬에서 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이 제공된 적이 거의 없다. 접근 자체가 막혀 있는 이들에게 ‘암표’란 무슨 의미일까. ‘불법 티켓 거래’를 주제로 한 원고 청탁을 수락할 때만 해도 몰랐다. 이 주제로 공연예술계의 지난 24년간의 성장과 한계를 감각할 줄이야! 어쩐지 뒷맛이 쓰다. 암표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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