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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가 읽어준 선자의 일기장

김민하는 일기를 쓰고 녹음하면서 현재를 간직한다. 그녀가 읽어준 〈파친코〉 속 선자의 일기장.

<파친코> 시즌 2 공개 이후 바빴을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도 틈을 내서 즐긴 것들이 있나요?

최근에는 주로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봤어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는데, 비행기에서 보는 게 아쉬웠죠. 이건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인데 말이에요.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퍼펙트 데이즈>예요.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잖아요.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데, 저는 그런 부분이 좋았어요. 주인공의 서사가 나오지는 않지만 계속 상상하게 되고, 또 행동과 얼굴에서 다 표현되고 있고요. 너무 아름다운 영화예요.

기회가 되면 <파친코>의 배우에게 ‘오프닝 시퀀스’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어요. 배우들이 어떤 음악에 맞춰 어떤 춤을 추었을지 궁금했거든요. 배우들이 춤추는 모습을 더 길게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시즌 1 때는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배우들이 원하는 노래를 이야기하면 그걸 계속 틀어줬어요. 저는 주로 로큰롤을 틀어달라고 해서 그냥 미친 듯이 춤췄죠.(웃음) 시즌 1에 비하면 시즌 2는 여유가 있었어요. 2일 동안 찍었거든요. 저에게는 <파친코> 속 1980년대 이야기에 나오는 배우들을 만나서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작품을 촬영할 때는 그렇게 만날 일이 없으니까요. 다 모인 김에 회식을 하기도 했죠.

시즌 1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선자가 결혼식 때 입은 하얀 한복을 입고 있어요. 그런데 시즌 2에서는 상복을 입고 있죠. 2회에서 이삭이 눈을 감았을 때 입었던 그 상복인가요?

맞아요. 제가 그걸 입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시즌 1 때 결혼식 때 입은 한복을 제안했죠. 춤을 출 때 옷자락이 나풀거리면 예쁘게 나올 것 같았어요. 또 선자를 보여줄 수 있는 옷이라고 여겼거든요. 시즌 2에서는 상복이 많은 걸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의견을 냈어요.

시즌 2를 준비하면서 선자에 대해 일기를 썼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대본을 읽으면서 7년 동안 선자가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내용을 끄적였는데, 그게 선자의 일기가 되더라고요. 이삭에 대한 그리움, 한수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고충에 대해서도 썼어요.(웃음)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도움이 많이 됐죠. 나머지 부분은 현장에 맡겼어요. 분장하고 의상을 입고 다른 배우들과 마주쳤을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더 몰입하려고 했어요.

2회에서 이삭을 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파친코> 시청자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 같아요.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하나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시나리오에는 선자가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서 저는 울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 저 같아도 남편이 눈앞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다면 울지 않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보는 나의 마지막 모습이 ‘당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태도이길 바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촬영할 때는 눈물을 참지 못했죠. 자세히 보면 제 눈이 퉁퉁 부어 있어요. 정말 많이 쏟아내고, 그러고 나서 참으려고 하는데 계속 눈물이 쏟아졌어요. 지금도 그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면 감정이 북받쳐 올라요.

4회에는 또 다른 감정으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수가 선자에게 운전을 시켜주는데, 시즌 1·2를 통틀어 선자가 가장 환하게 웃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재미있었어요. 수동 기어로 조작하는 옛날 자동차를 운전해야 해서 그것도 배웠거든요. 선자에게는 짧지만 조금 쉬는 시간 같은 순간이었죠. 이어지는 한수와의 키스 장면도 흥미로웠어요. 선자에게서 옛날 소녀 같은 모습이 다시 튀어나오잖아요. 그 장면을 저도 참 좋아해요.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원작의 선자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한수가 지금도 자신을 여자로 보는지 끊임없이 궁금해합니다. 4회의 그 장면은 원작의 감정을 농축해서 영화적으로 각색한 것 같았어요.

이삭을 사랑하는 것과 한수를 사랑하는 건, 결이 다르지 않을까요? 한수를 향한 선자의 사랑은 굉장히 본능적이에요. 그래서 몸이 반응하는 거죠.

4회에서 선자는 엄마 양진과 재회합니다. 이 장면이 주는 울림도 컸을 것 같아요.

양진과 선자는 10년 넘게 떨어져 살다가 재회하잖아요. 우리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내가 열여섯 살 때 엄마랑 헤어졌어. 그리고 서른 살이 되어 다시 만나면 나를 알아볼 것 같아?” 이렇게요.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멀리서 실루엣만 봐도 알아볼 것 같은데?”라는 거예요. 엄마와 딸은 당연히, 그렇게 알아볼 것 같아요.

시즌 1 촬영 때는 외할머니에게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봤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어떤 걸 물어봤는지 궁금하군요.

외할머니, 아빠, 엄마에게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지 물어봤어요. 시즌 2에서는 모성애의 감정을 고민해야 했으니까요. 특히 할머니는 7남매를 키우셨거든요. 할머니는 그 7남매가 다 소중했다고 하시면서,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부모님도 “그냥 너희니까 너무 좋고, 사랑스럽고, 좋은 것만 해주고 싶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마음이 선자의 생존력에 가장 많이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봐요.

시즌 1 촬영이 끝난 후 의상 감독님에게 작품 속 한복을 받았다는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어떤 장면에 입은 의상이었나요?

선자가 처음 오사카로 떠날 때 입었던 하늘색 두루마기요. 그리고 한수와 만나는 빨래터에서 입었던 한복이에요. 옷장에 고이 걸어놨답니다.(웃음)

시즌 2에서는 시즌 1에 비해 의상이 더 다양해졌습니다. 새로운 의상이 주는 느낌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이제 한복만 입고 살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일도 더 많이 해야 하고요. 또 그때 일본에서 한복을 입는 건 살아가는 데 너무 불리하잖아요. 시즌 2에서는 몸뻬를 많이 입었죠. 일단 너무 편했어요.(웃음) 몸이 편하니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평소에는 어떤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는 편인가요?

(자신의 베이지색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가리키며) 그냥 이렇게 입고 다녀요. 편하게.(웃음) 옷을 좋아해서 또 꾸미고 싶을 때는 꾸며요. 컬러를 매치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폭로: 눈을 감은 아이>와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 공개됩니다. 또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 드라마 <조명가게>도 촬영했어요. <파친코> 이후 선택한 작품이 하나씩 공개되는 시기 같아요. 주로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해왔나요?

<파친코> 이후에 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항상 오디션을 봐야 했는데, 이제는 대본이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선택 기준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내가 잘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찾아낸 제가 하고 싶은 건 결국 사랑 이야기였어요. 사랑을 통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진실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최근 영화 전문지 <씨네21>에 기고한 칼럼을 봤어요. 일기를 자주 쓴다는 것도 그렇고… 글 쓰는 일에 친숙한 편인 것 같아요.

거의 매일 일기를 썼고, 노랫말을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저 혼자만 간직하는 글이에요. 그래서 칼럼 제안을 받았을 때 두려웠죠. ‘내가 쓴 글을 누가 읽을 것 같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텐데 써도 되나?’ 공개적으로 글 쓰는 게 뭔가 나를 들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왜 겁을 먹어야 하나 싶더라고요.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칼럼에서 평소 일상의 소리를 녹음한다는 내용을 봤어요. 최근에 녹음한 건 어떤 소리일까요?

(스마트폰에서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 그냥 이런 소리예요. 대부분 친구랑 걷거나 산책할 때 녹음해요. 대화하는 소리, 새소리 같은 걸 담죠. 이건 제주도에서 녹음한 거고요.

그렇게 녹음한 소리를 나중에 들어보나요?

그럼요. 저는 음악 대신 녹음한 걸 들을 때도 많아요. 주로 걸을 때 듣곤 하죠.

일상의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나 일기를 쓰는 것이나 모두 시간을 아카이빙하는 거잖아요. ‘기록’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일기에도 자주 적었죠. “나는 왜 이렇게 기록하는 걸 좋아할까?” 어쩌면 내가 영원한 것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죠. 녹음을 하는 이유도 그 순간에 제 오감으로 느끼는 게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에요.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그곳 공기가 너무 좋아 녹음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바로 그런 순간인 거죠. 그런 느낌을 많이 기억하고 싶고, 추억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곧 10월입니다.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2025년에 가장 기대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잠시 생각하다) 조카가 생겼어요. 언니가 딸을 낳았거든요. 지금은 조카가 어떻게 클지 너무 기대돼요. 처음 말을 할 때 ‘엄마’부터 할지 ‘아빠’부터 할지, 아니면 ‘이모’ 먼저 할지…(웃음) 이게 지금 가장 큰 관심사예요. 배우로서는 <파친코>가 아닌 다른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연이어 보여드릴 텐데, 반응이 어떨지 불안하기도 하죠. 하지만 앞으로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을지 기대되기도 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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