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Dream
풍요의 계절 10월, 〈보그〉가 전하는 가을 소식.
84세의 랄프 로렌은 대충 하는 게 없다. 그는 2025년 봄 컬렉션 쇼를 위해 뉴욕시에서 멀리 이동해야 하는 브리지햄프턴의 말 목장으로 게스트를 초대했다. 7만6,900㎡(2만3,260평) 규모로, 그 마구간 근처에는 1970년대 콜로라도 번호판의 빨간 페라리를 비롯해 그의 빈티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셔와 주드 로, 나오미 왓츠, 톰 히들스턴, 콜맨 도밍고와 영부인 질 바이든 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이 장애물을 넘는 쇼가 원형 훈련장에서 펼쳐졌다. 2018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로렌의 50주년 기념 쇼에 참석했다면 이번 쇼에서 당시 분위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랄프 로렌 컬렉션과 퍼플 라벨, 폴로 랄프 로렌 의상을 입은 여러 세대의 모델들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그중에는 크리스티 털링턴과 나오미 캠벨, 태어나서 첫 런웨이 워킹을 선보이는 사랑스러운 미소의 아이들도 있었다. 50주년 쇼 이후 몇 년간 미국 패션계는 팬데믹과 그 여파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패션계의 원로인 로렌은 등대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성공은 후세대 디자이너들에게 모범이 됐고, 그의 의상은 전 세계에 미국 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햄프턴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그날 밤 선보인 의상은 해변에 잘 어울리는 경쾌한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필수 아이템인 성조기 패턴 스웨터는 화이트 크로셰 반바지와 짝을 이뤘고, 같은 크로셰 소재의 롱 드레스는 네크라인이 깊이 파여 있었다. 요점은 햄프턴에서 열리는 어떤 모임에나 어울릴 만한 옷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영장 바비큐 파티를 위한 캘리코와 레이스 의상, 자선 파티에 입고 갈 미드나잇 블루 컬러 슬립 드레스와 아이보리 리넨 재킷도 등장했다. 말 목장이라는 무대에 걸맞게 스웨이드와 가죽 프린지 장식 웨스턴풍 의상도 있었다.
쇼가 시작되기 전, 데이비드 로렌은 기자들에게 빈티지 자동차를 보여주면서 아버지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에 따라 차 외관과 내부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어떻게 맞춤 제작했는지 설명했다.
이는 로렌이 쇼 의상을 스타일링하는 정교하고 능숙한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옷은 그의 취향대로 클래식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믹스 매치다. 소박한 화이트 코튼 톱에 비즈 프린지 장식의 긴 스커트를 매치하고 웨스턴 벨트로 포인트를 준 룩, 마린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스트라이프 셔츠, 핀스트라이프 수트를 레이어드한 룩, 크리스티 털링턴이 입은 구멍 난 배기 진과 연미복 재킷 등등. 쇼가 끝나자 로렌은 미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파리 올림픽 폐막식 때 입었던 팀 USA 재킷을 입고 나와 인사했다. 그 모습 뒤로 5주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한 팝업 폴로 바(Polo Bar)가 보였다. 뉴욕에 있는 폴로 바의 두 배 규모였다. 로렌은 어떤 것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