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케어’가 진짜 뷰티의 세계로 진입했다
프리미엄 성분, 클린 포뮬레이션, 럭셔리 패키지. 펫 케어가 뷰티 언어를 빌려온 이유.
지난달 로스앤젤레스 실버레이크의 한 펫 부티크에서 36달러, 5만원 정도 하는 반려견 드라이 샴푸의 성분표를 읽다 손이 멈췄다. 클린 성분, 생분해 가능한 용기, EWG 인증, 크루얼티 프리··· 잠깐, 이건 내가 세럼 고를 때 체크하는 항목 아닌가? 그 옆엔 아보카도 오일로 만든 건성용 모발 샴푸와 크림, 럭셔리 그루밍 키트가 놓여 있었다. 패키지는 정교하고 예뻤으며, 성분표는 투명했다. 순간 헷갈렸다. “잠깐, 내 화장품을 사러 왔나, 반려견 모모의 샴푸를 고르러 왔나?”
언젠가부터 소셜 미디어 피드에는 반려동물의 ‘웰니스 루틴’이 일상처럼 등장한다. 유치원에 가는 강아지, 스파 케어를 받은 대형견, 럭셔리 베드에 누워 있는 고양이··· 특히 패션 디자이너들의 반려동물은 이미 하나의 아이콘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불테리어 네빌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20만 명을 거느린 스타로, 10년 전엔 자서전까지 출간했다.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의 닥스훈트 투투는 데뷔와 동시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다.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반려견 존존도 그의 피드 단골손님이다.
한편 미국 <보그>는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한 디지털 프로젝트 <Dogue>를 통해, 전 세계 반려견을 커버 모델로 불러냈다. 독자 참여형으로 진행한 이벤트는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개’를 찾는 형식을 취했지만, 반려동물을 이미지로 소비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에 주목한다.
반면 내 친구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반려견 사료를 고르는 일로 30분을 쓴다. 성분을 확인하고, 인증 마크를 찾는다. “요즘은 내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 루나 사료 고르는 데 진지해졌어.” 그녀만이 아니다. G마켓의 2024년 반려견 사료 판매량은 아기 분유와 이유식의 2배를 넘었고, 마켓컬리의 반려동물 상품 판매는 3년 만에 5배 성장했다. KB금융그룹이 발표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를 보면 더 흥미롭다. 반려 가구의 월평균 지출액은 19만4,000원. 2023년 15만4,000원에서 4만원이나 뛰었다. 미국의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177조원에서 2030년 270조원으로 예측된다. 이 방대한 성장을 “반려동물의 가족화 경향이 고급 소비 패턴을 촉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커지는 건 프리미엄 케어 영역이다. 단순한 미용이나 위생 관리가 아니라 컨디션 관리, 피부 케어, 영양, 스트레스 케어를 포함한 총체적 웰니스. 우리가 스스로에게 투자해온 루틴이 자연스럽게 반려동물에게까지 확장된 것이다.
미국에서 주목받는 ‘릴 러브 독(Lil Luv Dog)’도 이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카라 산타나 레토(Cara Santana-Leto)와 스테파니 수가나미(Stephanie Suganami)가 1년 전 론칭한 브랜드로, 첫 제품인 식물 기반 드라이 샴푸는 대나무 용기라 집에서 퇴비화가 가능하고, 여행용 사셰는 심지어 물에 녹는다. 가격은 36달러. “우리의 미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게 필요했어요.” 스테파니가 말한다. 두 창업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카라는 뷰티 테크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스테파니는 킴 카다시안의 브랜드에서 COO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디지털 마케팅과 뷰티 산업을 꿰뚫고 있었다. “뷰티 제품을 고를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있잖아요. 깨끗한 성분이나 사회적 책임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펫 케어에는 그런 게 거의 없었어요.”
스테파니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 “펫 케어 산업은 규제가 너무 약해요. 그루밍 제품의 성분 감독이 전혀 없죠.” 그녀는 2018년부터 환경 운동 그룹 EWG와 협력해왔다. 릴 러브 독은 EWG 인증과 리핑 버니(Leaping Bunny) 인증을 모두 받았다. 투명성, 지속 가능성, 클린 포뮬레이션. 인간 뷰티 산업이 지난 10년간 추구해온 가치가 이제 펫 케어로 넘어오고 있다.
뷰티 에디터 출신이 만든 ‘비쉬(Biche)’는 정서적 접근이 돋보인다. “펫 케어를 정말 ‘음미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반려동물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창립자 알렉산드라 폴리(Alexandra Pauly)의 말이다. 향수 전문가와 협력해 만든 샴푸, 오일 제품은 그녀의 닥스훈트 ‘캠’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다. “동물과의 교감은 정말 독특해요. 인간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죠.”
그 밖에도 기발한 아이디어의 제품이 눈길을 끈다. ‘프라이드앤그룸(Pride+Groom)’은 아보카도 오일과 칼렌듈라 추출물로 모질 타입별, 고민별 샴푸를 만들고, ‘플루프(Floof)’는 과학 기반 도그 스킨케어로 승부를 건다. ‘도그 바이 닥터 리사(Dog by Dr Lisa)’의 헤어 마스크는 해초 파우더, 호호바 버터 등으로 만들어 ‘실크와 구름 사이 촉감’을 보장한다. 이들이 파는 건 단순히 기능이 아니다. 패키지 하나, 향 하나에 브랜드 세계관이 담기고,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함께 경험하는 순간이 설계된다.
패션 하우스도 이 흐름을 비켜가지 않는다. 루이 비통, 셀린느, 발렌시아가, 구찌, 몽클레르 같은 럭셔리 하우스에서 펫 컬렉션을 선보이고, 셀럽들은 직접 브랜드를 만든다. 존 레전드와 크리시 타이겐 부부는 수의사의 조언을 받아 건강한 사료 브랜드 ‘키스멧(Kismet)’을 론칭했다. 배우 캐서린 헤이글(Katherine Heigl)은 유타주 목장 이름을 딴 브랜드 ‘배드랜드 랜치(Badlands Ranch)’를 설립해 천연 재료로 만든 간식, 사료, 건강 보조제를 소개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펫 푸드와 용품 시장은 기본이고, 이제는 건강검진, 보험, 유치원, 스파, 호텔 서비스까지 확장되고 있다.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 같은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시장이 성숙할수록 중요한 건 결국 신뢰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변화가 정서적 케어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팬데믹 이후 반려동물은 많은 이에게 안정과 회복을 의미하는 존재였고,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도 같은 방향의 웰니스를 선물하고 싶어 한다. 그루밍은 단순한 손질이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되고, 영양 케어는 사랑의 연장선이다.
미래는 더 정교해질 것이다. 반려동물 목에 거는 스마트 목걸이가 심박수와 활동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DNA 검사로 맞춤형 영양 가이드를 받는다. ‘펫리브로(Petlibro)’의 스마트 자동 급식기는 며칠간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기술로 <타임>의 2024년 최고 발명품에 선정됐다. 미국의 펫 플랫폼 ‘추이(Chewy)’는 24시간 수의사 원격 상담으로 지난해 100만 건의 상담을 기록했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심이 되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글로벌 펫 경제가 2030년 5,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 2027년 6조원에서 2032년 21조원으로 커진다. 이제 기르는 ‘애완’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반려’로 관계가 바뀌고 있다.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루나 사료 드디어 골랐어. 비싼데 기분이 좋아. 루나한테 제대로 해주는 것 같아서.”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모모의 샴푸를 고르는 그 순간이, 결국 나를 돌보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의 펫 웰니스 트렌드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것이다. 이건 단순히 반려동물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존재에게 어떻게 시간과 마음을 쓰는가. 그 선택이 결국 내가 사랑하는 방식을 말해준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