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게 없다면 내가 만든다’, 도날드 저드 가구展
미국의 대표 조각가이자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도널드 저드의 주요 가구 작품을 일괄하는 전시 <Donald Judd: Furniture>가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4월 26일까지 열립니다. 저드는 예술, 건축, 디자인(가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입체 작업으로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연 주인공이죠. 단순한 형태, 반복, 색채와 재료의 물성을 정직하게 다루면서, 자신만의 미니멀 철학을 다방면으로 펼쳐왔는데요. 특히 많이 보셨을 선반 형태의 작품은 전 세계 미니멀리즘 관련 전시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작품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대표작은 물론이고, 1970~1990년대에 제작한 저드의 다양한 가구 38점을 드로잉, 판화 등 작가의 사고와 탐구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작업과 함께 만나볼 수 있는데요. 더욱이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첫 번째 가구 전시라니 더 기대되는군요.
저드에게 가구를 만든다는 건 자신만의 미학적 신념을 일상과 삶에서 구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 그는 뉴욕 101 스프링 스트리트에 있는 자신의 거주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기존 가구는 장식이 너무 많거나 만듦새가 조악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저드는 자신의 공간과 엄격한 질서를 이루는 가구를 들여놓고 싶었습니다. ‘원하는 게 없다면 내가 만든다’라는 정신에 따라, 맨 먼저 나무 침대와 금속 세면대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후 1977년에 텍사스 마파(Marfa)의 새로운 거주 공간에 구비할 가구를 대거 디자인하기에 이릅니다. 건축과 예술, 그리고 가구가 하나의 완결된 질서 아래 있어야 한다고 믿은 완벽주의자이기에 가능한 시도였죠.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전시장은 작가가 실제 생활하고 작업한 곳을 연상시키는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무, 금속, 합판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가구, 선반, 테이블, 의자 등이 정제된 채 놓여 있고요. 그는 가구를 디자인할 때 재료의 물성을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 그리고 가구의 구조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공간 중심을 차지하는 테이블을 관찰하다 보니, 이토록 군더더기 없이 간결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물론 같은 이유로 언뜻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그시 바라보다 보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공간 자체와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가구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저는 테이블 상판의 넓이와 다리, 그리고 빈 공간의 명료한 비율을 알아차린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요. 가히 수행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실천력이 빚어낸 아름다운 조각입니다.
“가구의 예술성은 예술을 닮아서가 아니라, ‘의자’라는 쓰임새에 충실한 합리성, 유용성, 그리고 비례에서 나온다.” 저드의 이 유명한 말이 곳곳에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드는 살아생전 가구 디자인, 제작, 판매, 유통에 관련된 접근 방식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해 글로 남기고자 했다죠. 이러한 실행력이 돋보이는 건, 함께 소개하는 저드 재단의 소장품, 판화와 드로잉 자료 덕분일 겁니다. 드로잉은 감동을 준 이 가구들이 얼마나 치열한 사고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되었는지 명백히 증명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기법의 판화 작품은 애초에 이러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 형태와 색에 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하게 하죠. 그러므로 저드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건 우리에게도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가구), 형태와 색, 비례와 균형, 공간과 작품 등의 경계를 마음껏 연결하고 해체해보는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