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이렇게, 구찌의 봄이 왔다
SPRING COMES.
수장의 부재 속에 구찌는 결단이 필요했다. 과거로 회귀해 지난 영광을 되새길지, 새로운 노선을 개척할지. 고민 끝에 던진 승부수는 스타 디렉터, ‘뎀나 바살리아’의 발탁. 전환의 각이 제법 컸던 만큼 기대와 우려가 극명히 갈렸지만, 지난 9월 영화와 룩북 형식으로 발표한 ‘라 파밀리아’ 컬렉션은 하우스의 오랜 팬도, 뎀나의 열렬한 지지자도 만족할 만한 순조로운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2월, 밀라노의 어느 웅장한 전당에서 드디어 그 온전한 형상이 세상에 공개됐다. 객석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건 고대 로마 조각상 12점. 크림 빛 대리석 벽과 바닥까지, 잠시 다른 공간인 듯했다. 불현듯 오늘 아침 뎀나가 보내온 레터가 떠올랐다. 우피치 박물관에서 압도당했다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프리마베라)>과 <비너스의 탄생>에 대한 찬사. 뎀나식 비너스는 어떤 모습일지 잠깐 상상한 사이, 조명이 낮아지고 음악이 울려 퍼졌다.
곧 눈을 검게 칠한 모델이 화이트 미니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며 무대에 등장했다. 늘 그랬듯 역시나, 뎀나가 또 허를 콱 찔렀다. 그 뒤로는 근육질의 남자 모델이 보디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화이트 톱과 진을 입고 성큼 걸어 나왔다. 뎀나 특유의 과장된 실루엣은 다른 의미로 한껏 과장돼 보였고, 사이사이 등장한 낮은 허리선과 은근한 노출은 톰 포드 시절의 구찌를 상기시켰다. 이어 탐욕적인 광택의 레더 재킷, 신체 실루엣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글리터 톱과 메탈릭 팬츠, 플루이드 수트와 퍼 코트가 쏟아져 나왔다. 뎀나의 주종목인 스트리트웨어 스타일도 찾아볼 수 있었다. 트랙 팬츠와 페니 백, 그리고 드레이프 티셔츠와 같은 스케이터 룩. 웹 스트라이프, GG 수프림과 같은 하우스를 상징하는 패턴은 조용하고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피날레는 백리스 글리터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 모스. 컷아웃 아래로 아찔하게 드러난 10캐럿 다이아몬드 세팅 G-스트링이 구찌의 황금기를 완벽하게 소환했다.
이번 컬렉션을 보고 누군가는 톰 포드의 관능을, 또 누군가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낭만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뎀나의 도발을 떠올렸다면, 모두 다 맞는 말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를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지금 하우스가 선택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우스는 결과적으로 과거에 매몰되지도, 급진적인 미래로 성급히 도약하지도 않았다. 과거와 현재, 사랑과 증오, 사치와 실용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게 지금의 구찌다. 더 가볍고, 감각적인 태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