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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성의 충만한 계절

넘어지고 부러지길 여러 번, 그 끝에는 온전한 자신이 있다. 그렇기에 후회도 미련도 없는 고아성의 만춘.

플리츠 티어드 드레스는 포츠 1961(Ports 1961).

고아성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구면이다. 우리는 교문을 공유하는, 같은 이름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괴물>(2006)로 전 국민에게 얼굴을 알리던 무렵이었고, 소녀 고아성의 뒤로는 벌떼처럼 아이들이 따라다녔다. 큰 헤드폰을 쓴 채 고개를 떨구고 걷던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며, 어린 마음에 ‘저 친구도 참 피곤하겠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지난 2월 공개된 넷플릭스 <파반느> 속 고아성이 연기한 미정에게 극도로 이입한 건 그의 여리고 앳된 얼굴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인터뷰를 앞두고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는데 고아성이 들어섰다. 종일 이어진 연극 <바냐 삼촌> 연습을 마치고 핼쑥한 얼굴로 늦은 저녁 촬영장에 들어선 그녀의 손엔 사탕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선물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수제 사탕집이 있는데 어제 우연히 들렀거든요. 오늘 촬영이 생각나서 샀어요.” 수줍게 사탕을 건네는 고아성에게서 기억 저편 소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나만 알고 있던 비밀을 실토하는 것으로, 인터뷰와 수다, 아니 대화 그 어디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플리츠 티어드 드레스는 포츠 1961(Ports 1961).

중학교 시절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파반느>를 보는 내내 미정과 중학생 고아성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많은 친구들이 쫓아다녀도 의연했던 모습이 기억나요.

신기할 따름이에요. 고등학교 선배들이 많이 구경 왔던 기억이 나요. 그때와 비슷한가요?(웃음)

<파반느>를 보는 내내 꾸밈없던 옛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작품 시나리오를 받은 게 오래전이었다고요?

2009년이었나?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박민규 작가님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처음 읽었어요. 읽고 나니 나를 낱낱이 세세하게 들킨 것 같아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감명 깊은데 왠지 피하고 싶은 게 첫인상이었어요. 그러고는 2017년 이종필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주시고도 머뭇거리셨는데, 제가 먼저 “꼭 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죠. 이후에 작품 제작이 멈춘 때도 있었는데, 늘 마음 한쪽에 품고 있었어요. 옛날부터 멜로 영화를 찍는다면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상상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물론 사랑은 두 대상이 하는 거지만, 여자 주인공이 혼자 있을 때도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파반느>는 그런 지점이 잘 담긴 작품이었거든요.

스트라이프 재킷은 에르뎀(Erdem).

그와는 반대로 “나의 나약함을 들킨 것 같은 작품”이라고 했죠. 대중 앞에 드러나는 직업인 만큼 부족한 부분은 최대한 숨기고 싶었을 법한데요.

작품을 하고 싶던 2017년부터 작품이 제작되기 직전까지 제 안에 조금 변화가 있었어요. 스스로 소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꼈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죠. 그런데 이 작품을 하려면 아무래도 저 바닥 아래 있는 솔직한 자신과 마주해야겠더군요. 오랜 세월 배우로 일하면서 저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부분도 또 극대화하고 싶은 부분도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잖아요. 퍼스널 컬러처럼. 근데 <파반느>를 하며 제 강점과는 전부 반대로 갔어요. 외형부터 그랬는데, 의상감독님과 제게 가장 안 어울리는 치마 길이부터 골랐죠.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전까지 어떻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 상관 없다’ 그냥 어떻게 보이든 ‘나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임했죠.

개인적으론 작품을 보는 내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절절한 사랑보다는 어디서든 계속 겉도는 삶에 대해서요.

경록이 대학에 입학하고 같은 무용과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 미정을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미정이 앉아 있거든요. 그게 제 인생의 축약본 같아요. 뭔가 늘 어색하고 뻘쭘한 채 사회에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제가 너무 슬퍼 보여서 감독님이 조금 더 재밌게 가라고 하셨어요. 제가 보기엔 그때가 미정이 경록과 헤어져야겠다 결심한 때거든요. ‘너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라고, 내가 있는 이 자리에 있으면 네가 너무 불편해질 테니까’ 이런 마음으로 말이죠.

비즈 장식 재킷과 톱, 도트 쇼츠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프린지 로퍼는 사카이(Sacai).

일찍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고 그 길이 너무 명확했기에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라 가늠하지 못했어요.

‘나는 어디에 속한 걸까?’라는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요즘 회사 없이 혼자 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많이 느끼는 것도 있을 테고요. 사실 작품을 할 때마다 제 애티튜드가 달라져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할 때는 영화 속 캐릭터 자영처럼 외향적으로 굴었어요.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도, 스태프한테 장난도 치고요. 대기 시간에 조용히 있다가 촬영 시작해서 바로 활발해지는 게 저는 잘 안되더라고요. <파반느> 현장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태프들이 많이 계셨는데, 촬영 시작 전 “이번에는 현장에서 조금 비켜 있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어요. 그때 제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당황하지 않도록요.

원래 성향은 미정에 더 가깝군요.

맞아요. 근데 그렇다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찍을 때가 또 거짓말이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작품이 끝나면 바로 제 자신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가 한동안 이어져요. 릴레이 경주처럼요.

애정이 깊어 아직도 작품과 헤어지는 중인 듯싶지만, <파반느>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감독님들을 되게 부러워해요. 자기만의 고유한, 강렬한 색채의 기억을 영상화하거든요. 아주 오래전 나이가 지긋한 감독님이 미팅 중에 잠깐 자리를 비우시길래 수첩을 몰래 힐끗 본 적이 있어요. 거기에 “어렸을 적 우리 집 담벼락 골목에 대한 어떤 이미지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내가 그릴 수밖에”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흐릿한 기억을 붙잡아 영상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얼마나 축복이에요. 이종필 감독님도 작품마다 자신의 특별한 기억을 넣으시거든요. 경록의 매미를 지켜주는 장면도 그렇고 되게 많아요. 감독님을 10년 정도 알고 지냈기에 이번 영화가 감독님 인생의 한 허리를 끊는 작업이었을 거라 짐작했어요. 근데 되돌아보니 저도 이 작품을 오랫동안 품고 ‘이렇게 작업해야지’ 사소하게나마 염두에 두었던 모든 순간이 다 끊어진 것 같아요. 근데 또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만족해요.

브라 톱은 엔폴드(Enfold).

경록처럼 청춘의 어느 시절을 성장케 한 존재가 있었나요?

작업실인 것 같아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자기만의 방’을 처음 가져본 경험이었어요. 살림살이 하나도 없이 책상과 대본만 있었거든요. 소설가 김영하의 말처럼 “일상의 상처와 기억이 없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죠. 본가에서 독립하면서 작업실을 없앴는데 요즘도 그리워요.

<파반느>가 끝나고 이종필 감독에게 옴니버스 영화 <극장의 시간들> 현장을 돕겠다고 전화했다면서요. 연기, 현장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요.

촬영이 끝나자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 봐요. 마음이 너무 허해서 전화를 드렸는데, 현장 근처에는 얼씬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말의 미스터리를 오늘 감독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극장의 시간들> 중 제가 참여한 ‘자연스럽게’에 윤가은 감독님이 저와 함께하고 싶으셨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대요.(웃음)

<극장의 시간들>의 ‘자연스럽게’에서 감독 역할을 맡아 아역 배우들과 함께했죠.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요.

뭐랄까, 개인적인 기회라 여겼어요. 카메라 전면에 나서서 하는 연기가 아닐뿐더러 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거든요. 어느 작품이든 저는 아역 배우의 연기를 편하게 보지 못하는 편이에요. 윤가은 감독님은 아역 배우 친구들이 현장을 일터로 느끼지 않게 노력하시는데, 그 방식이 참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이번에 참여한 배우들이 영화 <괴물>도 모르는 2013~2014년생이어서 친구들한테 저를 진짜 감독으로 소개하려는 깜찍한 거짓말도 감독님과 꾸며봤어요. 워낙 베테랑인 아역 배우 친구가 저를 알고 있어서 그 작전은 실패했죠.(웃음)

점프수트는 엔폴드(Enfold), 카드 케이스 펜던트 네크리스는 베르사체(Versace).

다정한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 준비 중인 연극 <바냐 삼촌>은 어때요? 첫 연극 작품이잖아요.

연극을 좋아하는데, 제가 걸어온 것과는 다른 길이라 여겼어요. 저는 카메라에 담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매체를 위해 연기해왔으니까요. 그런데 팬데믹 동안 연극계가 공연을 못 올리니까 해외에서는 연극을 촬영해서 온라인으로 배포하는 일이 잦았대요. 그걸 보면서 경계가 무너지는 걸 느꼈죠. 저는 필름으로 시작해 스트리밍까지 왔잖아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겁이 없어요. 게다가 대본이 너무 재밌었어요. 예전에도 몇 작품 읽었지만 안톤 체호프의 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제가 어른이 되고 나서 읽으니 새롭더라고요. 또 영화는 한번 찍으면 끝인데, 연극은 매일매일 같은 대사를 하는 데 가치가 있다고 느꼈어요. 연극은 정말 앙상블이라, 연습에 참여하는 배우에 따라 그만의 공기가 생겨요. 어느 배우가 빠졌을 때 부재의 공기도 느껴지더라고요.

스크린 연기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깨치고 있군요.

맞아요. 아직 어떨지 감도 안 와요. 부끄럽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소냐’가 오디션 자유 연기의 대표적인 캐릭터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부담스러우면서도 저만의 ‘소냐’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레이싱 저지와 바이커 쇼츠는 웰던(We11done), 레이어드한 실버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레이스업 부츠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소냐’는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로 나아가는 ‘한 줌의 희망’ 같은 인물이잖아요. 인간 고아성의 삶에도 그런 희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해석한 ‘소냐’의 희망은 ‘일’이에요. 노동을 많이 사랑하고, 어떨 땐 그걸 사람보다 우선시하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모르겠군요. 기자님은요?

글쎄요. 저는 늘 어제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 되면 좋겠어요. 일로나 됨됨이로나 그게 희망일 거예요.

그럼 저도 그걸로 할래요.(웃음) 제가 존경하는 영화 제작사 대표님께 “어쩜 그렇게 일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은 적 있어요. 그랬더니 “나는 이 업계의 온도를 1도만이라도 올리고 싶어”라고 하시더군요. 거기서 오는 가치가 분명 있다고 느꼈어요. 기자님의 대답과 상통하는 맥락이 있어요. 조금이라도 진취적인 게 좋아요.

스트라이프 재킷과 풀 스커트는 에르뎀(Erdem), 시퀸 장식 뮬은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스스로 결정하기도 전에 배우가 됐잖아요. 그럼에도 계속 일을 사랑하나요?

자의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제가 자의로 찾았을 다른 직업이 지금만큼 만족감을 주었을까 싶어요. 저는 이 일의 가치를 일찍 찾은 편이에요. 물론 화면에 잘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드라마 <공부의 신>을 찍을 때 저는 하이틴물이라고만 여겼는데, 제가 연기한 캐릭터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고등학생의 “너무나 위로가 되었다”는 댓글을 보았어요. 그걸 보며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일이구나’ 깨달았죠.

<파반느> 미정도 그래요. 세상의 많은 ‘미정’에게 위로가 되었을 거예요.

다행이에요. 아무래도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니 다양한 나라의 리뷰를 듣고 있어요. 어느 태국 남성이 작품을 보고 “저는 <파반느>를 관람한 게 아닙니다. 미정에게서 제 평생의 삶을 보았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반응이죠.

슬리브리스 체크 셔츠, 슬리브리스 니트 톱, 레이어드한 시스루 스커트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미정과 소냐를 지나 만나고 싶은 캐릭터가 있을까요?

글쎄요. 먼저 <바냐 삼촌> 잘 끝내고 생각해보려고요. 저는 작품도 중요하지만 이전 캐릭터와 반대되는 걸 하고 싶은 욕망이 늘 커요. 예를 들면 SF물인 <설국열차>를 찍을 때는 다음 작품은 꼭 현실에, 땅에 발을 딛는 생활감 있는 사람을 연기하고 싶었거든요. 약간 청개구리 같죠? <파반느>가 끝나고는 진짜 나쁜 여성 캐릭터에 도전해보기도 했고요. 근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 단것 먹으면, 짠 거 먹고 싶고.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고. 그런 모순된 자신을 계속 받아들이는 거죠.

사람은 그런 모순 속에 크나 봐요. 다음에 우리는 또 어떤 얼굴로 만나게 될까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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