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가 스캔들’, 돈 들인 막장 드라마는 어떨까?

‘화인가 스캔들’, 돈 들인 막장 드라마는 어떨까?

남편 불륜을 직관한 아내의 반응’, ‘물건 집어 던지는 시어머니 참교육’. 유튜브 쇼츠 섬네일에 이런 제목이 붙어 있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당연히 클릭이다. 나도 클릭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자기 친구와 남편이 얽혀 있는 걸 본 여자는 놀라기는커녕 “기자들 다 와 있어. 들키면 어쩔 뻔했어?”라고 말한다. 그녀는 당연히 시어머니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신문을 집어 던지며 난리를 치는 시어머니 앞에서 술잔을 집어 던지며 말한다. “이런 걸 뭐 하러 하세요? 기분도 안 풀리는데…” 내용만 보면 크게 놀라울 게 없다. 아침 드라마,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또는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에서 보았거나, 보지 않았어도 한국 드라마 시청자라면 상상할 수 있는 ‘사이다’ 시퀀스라고 할까.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일일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가 아니라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이다. 물론 유통 플랫폼이 바뀌었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의 작품이라고 해도, ‘막장 드라마’를 ‘K-매운맛 시리즈’란 말로 바꿔 불러도, <화인가 스캔들>은 막장 드라마의 흐름에 놓인 드라마다. 이런 쇼츠를 기획한 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막장 드라마에 기대하는 무언가가 <화인가 스캔들>에도 있다는 걸 알리려 했을 테니 말이다.

디즈니+ ‘화인가 스캔들’ 스틸 컷

제목 <화인가 스캔들>에서 ‘화인가’는 ‘화인’이란 이름의 대기업 오너 가족을 뜻한다. 주인공 오완수(김하늘)는 이 집 며느리다. 당장 먹고사는 게 어려운데도 딸에게 골프를 가르친 어머니 덕분에 그녀는 미국에서 골프 선수로 성공했고, 각종 기부 활동을 이어가는 셀러브리티가 되었고, 그래서 화인가의 큰아들 김용국(정겨운)의 구애를 받았다. 시어머니이자 화인그룹 오너인 박미란(서이숙)은 오완수에게 그룹 내 자선 재단 일을 맡겼는데, 이게 사실 비자금 세탁소다. 그런데 오완수는 열심히 기부 활동 및 사회 캠페인을 꾸려가다 ISIS(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피해자를 후원하고, 이 일로 살해 협박을 받는다. 실제 어디선가 그녀를 향해 총알이 날아오는데, 이때 한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도와준다. 친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던 경찰 출신의 서도윤(정지훈)이다. 서도윤은 친구의 죽음과 오완수 살해 시도 사이에 얽힌 접점을 파악하고, 이를 추적하기 위해 화인그룹 오너 가족의 경호원이 된다. 그의 역할은 그룹 내에서 ‘퀸(Queen)’으로 불리는 오완수를 보호하는 일이다.

디즈니+ ‘화인가 스캔들’ 스틸 컷
디즈니+ ‘화인가 스캔들’ 스틸 컷

재벌 가족, 비자금 세탁, 불륜, 핍박하는 시어머니, 핍박받는 며느리… <화인가 스캔들>에는 이것 말고도 더 많은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있다. 6화까지 방영된 현재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둘째 아들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 서사가 있다. 재벌 2세와의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황태자로 만들려는 여자와 그녀의 엄마가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의도 있다. 그런데 기존의 막장 드라마가 담지 못했던 서사도 있다. 국제 테러 단체의 살해 협박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테러전 등이다. 이게 말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극 중 설정상 마닐라를 배경으로 한 1화의 총격전과 6화의 드론 테러 장면은 ‘고속 촬영’을 통해 상당히 완성도 높은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지난 20여 년간 시청자와 언론이 조롱했던 ‘막장 드라마’의 흐름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장면이다. 돈 때문이다. 원래 ‘막장 드라마’는 낮은 제작비로 시청자들을 묶어놓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살인, 납치, 협박 등의 범죄가 그려지곤 했지만(<화인가 스캔들>의 작가가 쓴 <사랑만 할래>(2014)란 작품에는 거의 매회 납치와 감금이 등장했다), <화인가 스캔들>만큼 큰 규모로 묘사한 막장 드라마는 없었다. 액션 신뿐만 아니라 재벌 가족의 집과 사무실 등을 보여주는 미술에서도 <화인가 스캔들>은 돈을 들인 태가 난다. 문제는 돈을 들인 부분과 들이지 않은 장면의 편차다.

디즈니+ ‘화인가 스캔들’ 스틸 컷
디즈니+ ‘화인가 스캔들’ 스틸 컷

드라마의 제작비는 세트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배우의 이름값과 그에 따른 높은 출연료도 있다. <화인가 스캔들>이 가장 큰돈을 들인 부분은 역시 김하늘과 정지훈이라는 스타 배우다. 이 드라마에서 진지한 캐릭터는 두 배우가 연기하는 오완수와 서도윤뿐이다. 남편의 불륜과 시어머니의 핍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일을 하려는 여자,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는 동시에 외로운 여자를 보듬는 남자. 그런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의 공격. 그럴수록 서로에게 빠져드는 둘. 두 캐릭터가 나오는 순간에는 시청자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막장 드라마답지 않은 화려한 액션 신도 어디까지나 그들의 서사를 위해 마련된 것이니 말이다. 그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사실 막장 드라마식 농담이다. 시종일관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지르는 대기업 회장, 항상 주인공에게 당하는 남편의 불륜녀, 그리고 이런 상황을 내버려두는 무책임한 남편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시동생 부부 등등. ‘상위 1%의 민낯을 폭로하겠다’는 기획 의도를 내세웠던 막장 드라마들이 그렇듯 <화인가 스캔들> 또한 그 드라마들이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답습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의 매력을 ‘마라 맛’으로 긍정한다면, <화인가 스캔들>은 ‘마라탕후루’ 같은 드라마일 것이다. 막대한 제작비로 시럽을 두르고, 스타 캐스팅으로 진지한 감정을 섞어 마라 맛을 중화한 작품이니 말이다. 역시 중독적이기는 하지만, 그리 유쾌한 맛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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