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이고, 자유로우며, 아름답다! 까르벵의 루이스 트로터

여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결국 여자다. 요즘 여자들의 갖가지 취향을 만족시키는 여성 디자이너들을 〈보그〉가 만났다. 까르벵에서 두 번의 컬렉션을 발표한 루이스 트로터는 의식적이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옷을 통해 하우스를 재탄생시키고 있다.

까르벵 파리 스튜디오에서 컬렉션을 준비 중인 루이스 트로터. Courtesy of Carven

평일 이른 아침이면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는 파리 리브고슈에 있는 자신의 집을 나와 샹젤리제에서 조금 벗어난 까르벵(Carven) 본사까지 20분간 자전거를 타고 가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 통근 코스를 완전히 외웠다. 지난해 2월, 79년 된 메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수락한 트로터는 지난 5년간 잠자고 있던 브랜드를 다시 깨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파리 패션 하우스 아티스틱 디렉터는 개인 운전기사가 수행하는 것이 관례지만, 잉글랜드의 항구도시 선덜랜드에서 화통한 성장기를 보낸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면 사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머물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느낄 수 있겠어요?”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수도의 거리를 누비며 ‘바쁜 여자’들을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영감을 얻는다. 얼마나 많은 여자가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지 세거나, 어떤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를 기억해두는 것이다. ‘야생’에서 자기 디자인이 얼마나 ‘먹히는지’ 길거리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난 날, 트로터는 2024 가을/겨울 컬렉션의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은은한 광택이 도는 울 혼방 테일러링 원단으로 만든 것으로, 등이 노출되는 디자인이었다. 전임자와 달리 트로터는 어리고 순진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녀는 사람들이 풀어 헤친 듯한 옷의 미학에 경탄하기를 바란다. 오토바이나 지하철을 타는 동안 옷이 점점 흘러내리더라도 말이다.

“이 드레스는 얇게 패딩 처리한 나일론으로도 만들었어요. 이불을 입은 것처럼 보인답니다.” 트로터가 옷에 대해 설명했다. “겨울용으로 한 벌 챙겨둘 거예요.” 그녀의 등 뒤로 스튜디오 창문을 통해 에펠탑이 보였다. 역광으로 봄 햇살이 비쳤고, 그녀가 쓴 레이밴 에비에이터 선글라스의 금빛 틴트 렌즈가 도시의 오후 햇살과 잘 어울렸다. 신발은 집에서 실내용 슬리퍼를 겸하는 납작한 디자인의 까르벵 ‘방돔’ 뮬을 신고 있다.

여자라면 누구나 트로터를 ‘덕질’할 만하다. 50대 중반인 그녀는 영화 <러브 스토리> 속 알리 맥그로우의 젊은 시절처럼 진갈색 머리칼을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거의 민낯으로 다닌다. 트로터는 파리지엔 스타일의 신조를 따른 거라고 농담하며, 지나치게 신경 쓴 듯 보이는 것만큼 서툰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 태연함은 어떤 관행을 따른다기보다 펑크 무드에 가까우며, 특히 그녀가 언니처럼 확신에 찬 포옹을 해줄 때 더 확실히 느껴진다.

이제 까르벵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낸 그녀는 집에 있는 것처럼 매우 편안해 보였다. 하우스 아카이브를 자주 들여다보면서 설립자 마리 루이즈 까르벵(Marie-Louise Carven)과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1945년 자기 이름을 딴 레이블을 론칭한 마리 루이즈는 105세까지 살았고, 한가할 땐 비행기를 타고 떠났으며, 80대까지 디자인을 했다. “마담 까르벵은 여성이 최고의 삶을 살길 바랐습니다. 유토피아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고, 굉장히 급진적이었죠.”

작은 체구를 지닌 루이스와 마리 루이즈 모두 꽤 단순해 보이는 구조를 중심으로 작업해온 실용적인 여성이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종종 옷 안에 있습니다.” 트로터가 법의학적 시선으로 말했다. “마담 까르벵이 어떻게 옷을 만들었는지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실제로 외관보다는 내부에 대한 고찰이 더 많거든요.”

일찍부터 의상에 플라스틱 지퍼를 도입한 마리 루이즈는 자기 재능을 통해 여자들이 옷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의 디자인은 여성 신체의 곡선을 돋보이게 했으며, 1950년에는 푸시업 브라로 특허를 내기도 했다. 기성복을 개척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지만, 그녀의 아틀리에는 엄숙하기보단 장난스러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마찬가지로 트로터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녀가 늘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마리 루이즈가 자기 디자인 중 하나를 ‘럭키 드레스’라고 부른 것이 좋았다고 했다. “마리 루이즈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길 원했어요. 그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뉴욕의 갭과 캘빈클라인에서 2000년대를 보낸 트로터는 이후 9년 동안 조셉의 디자인을 책임지며, 일하는 여성을 위해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 간편한 유니폼을 구축했다. (트로터가 조셉에서 디자인한 바지는 여전히 컬트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운동복을 본떠 만든 이 바지는 최소로 꾸미는 ‘클린 걸’ 미학의 부상을 예견했다.) 그리고 2018년 파리에서 라코스테의 첫 번째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으며, 지난해 그 자리를 떠났다.

“첫 번째 챕터일 뿐이야. 너무 많은 걸 말하지 말자. 지나치게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하지 말자.” 올봄 트로터는 첫 까르벵 컬렉션을 준비하며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녀의 데뷔는 인상적이었다. 트로터는 속이 비치는 캘리코 원단 펜슬 스커트, 패딩 칼라가 달린 프레스트 실크 셔츠, 안쪽으로 코르셋을 더한 페플럼 스타일의 뷔스티에와 여유로운 핏의 검은색 모래시계 실루엣 미니 드레스를 제안했다. 이는 마리 루이즈의 1951년 작품 ‘에스페란토(Esperanto, 허리선이 잘록해 보이도록 재킷 안쪽에 패딩을 덧대고, 말총을 땋아 장식한 재킷과 스커트로 이뤄진 수트)’에 대한 오마주로, 트로터는 2024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적갈색 버전의 동일한 드레스를 다시 한번 선보였다. 검정 타바드(Tabard) 재킷도 있었는데, 트로터가 맨 처음 만든 옷과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마돈나 콘서트에 나풀거리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입고 가려고 만든 탱크 톱으로, 할머니께 받은 식탁보를 사용했다(할머니는 당시 10대였던 손녀에게 핀으로 어깨 경사면을 고정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상상력이 폭발했죠.” 그녀가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트로터는 자신의 컬렉션을 극찬하는 리뷰를 읽지 않았다. 언제 그 옷을 입을 수 있느냐고 묻는 친구들의 전화와 메시지로 원하던 모든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 유스케 다나카(Yuske Tanaka)와의 사이에 낳은 세 자녀 중 맏이인 열네 살 딸 코코(Coco)가 가장 먼저 줄을 섰다. “사이즈가 같아서 모든 옷을 함께 입어요. 하루는 까르벵 가방 중 하나를 집에 가져왔는데, 어느새 딸아이 팔에 걸려 있더라고요.” 트로터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트로터는 그날그날 해나가는 자신의 업무를 집 수리에 비유했다. “기초부터 시작합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지? 어떤 느낌일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여성이 입을지, 그녀의 실루엣은 어떤지에 대한 거죠. 그런 다음 차근차근 세워나갑니다.”

흰색 패딩 상의와 크림색 스커트, 스웨이드 장갑과 납작한 직사각 형태의 클러치, 복슬복슬한 니트 소재 신발은 까르벵(Carven).

브랜드 디자인 센터를 마담 까르벵의 원래 건물로 옮기기로 한 결정은 그녀의 비유를 현실로 만들었다. 지난 2월 트로터는 까르벵에 가자마자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가 될 아치형 천장 공간의 복원 공사를 감독하기 시작했다. 1층 부티크가 들어선 곳은 마리 루이즈 까르벵의 첫 매장이 있던 자리이며,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옆 공간은 분위기 있는 쇼룸이 되었다. 페인트로 대리석 무늬를 그려 넣은 이곳에서 모델들이 런웨이 룩을 입어보고 스타일이 완성될 것이다.

감각적인 것으로 가득한 하우스 투어가 계속되었다. “여기에서 패딩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답니다.” 트로터가 손끝으로 빛바랜 벨벳 벽지 원단을 누르며 말했다. 그녀는 이따금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식탁을 커다란 식탁보로 덮어 팀과 함께 식사를 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가족처럼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 가정적인 요소가 더 있다. 얇은 리넨 원단이 걸린 옷장, 버터 옐로 컬러로 꾸민 화장실 안에 화장대처럼 설치된 주얼리 진열장 같은 것 말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옷을 좋아합니다.” 트로터가 옷걸이에 걸린 검정 새틴 코트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팔을 끼워 넣자 맨몸에 입는 드레싱 가운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몸을 감싸안으면, 둥근 어깨선이 오페라 코트처럼 웅장해 보였다. “이곳에 왔을 때 메종이 아니라 집처럼 느끼길 원했습니다. 실용적이면서도 유용하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거든요.”

까르벵 본사 1층 부티크에서 베개처럼 푹신한 실크 티셔츠를 입어봤다. 판매 직원은 펜슬 스커트와 매치하길 권했지만, 나는 마시멜로 화이트 컬러의 이불을 두른 것처럼 보이고 싶어 아무것도 입지 않고 맨살로 ‘스타일링’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었다. 드레스처럼 보일 만큼 충분히 길었기 때문이다. 루이스와 마리 루이즈라면 어떻게 했을까? 페플럼 벨트를 두르고 느슨한 리본을 허리에 꽉 묶어 모래시계 실루엣을 만들면서 생각했다. 파리는 이제 저녁이다. 거울 셀피를 찍은 다음 이메일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받는 사람: 루이스 트로터, 제목: 럭키 드레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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