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엽 정치계를 휘어잡은 송시열은 친명(親明) 중화주의자였다. 일상생활에서도 명나라 복식을 하고 명나라 예법을 따를 정도였다고 한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자 중원(中原)의 문화 정통성을 이은 어버이 같은 나라라는 게 그의 인식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모아 가르친 속리산 계곡은 모화(慕華)사상의 요람이자 발신지 같은 곳이었다. ▶1689년 송시열이 죽자 제자들은 이곳에 그를 기리는 서원을 세우고 '화양서원'이라고 이름했다. '화양(華陽)'은 중국 문화가 햇빛처럼 빛난다는 뜻도 된다. 제자들은 또 명나라 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