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파 보도의 시초는 1956년 대선 당시 신익희 후보의 한강 백사장 연설이 아닐까 싶다. 당시 신문은 백사장을 메운 인파 사진과 함께 '사상 최대 30만명 운집'이라 보도했다. 주먹구구가 아니라 백사장 넓이를 감안한 추정이었다고 한다. 1987년 대선 때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 정당마다 "100만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자 페르미는 핵실험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핵폭풍에 따른 종잇조각 움직임으로 핵실험 폭발력을 추정했다. 그 뒤 기초 지식만 가지고 이를 확장해 합리적 추론을 하는 것을 페르미 추정이라 했다...